국정원 자체 개혁안에 강력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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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마련한 자체 개혁안은 민주당이 만든 개혁안과는 취지부터 내용까지 전혀 다르다. 민주당 개혁안은 국정원이 수사와 정보 수집에서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어 이를 분산시키자는 것으로 사실상 국정원 폐지에 가깝다. 하지만 국정원 자체 개혁안은 정보·첩보 수집에 과학기술을 접목시켜 ‘첨단 국정원’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의 국정원 강화 안이다. 이렇게 180도 다른 국정원 안에 대해 민주당은 십자포화를 퍼부을 태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최우선 의제의 하나로 다루겠다며 벼르고 있다.

 민주당의 국정원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인 문병호 의원은 3일 “결론부터 말해 정치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셀프 개혁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문 의원은 “현재의 국정원법(9조)에도 정치활동 관여 금지 조항이 있는데 국정원의 민간기관 출입 제한이나 서약서 작성 등은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용”이라며 “셀프 개혁안은 결국 착한 국정원이 되겠다는 말만 믿어선 국정원 개혁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점을 실증했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민주당으로선 절대 받기 어려운 셀프 개혁안”이라며 “더는 국정원의 주관적인 의지에 맡겨선 안 되고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역시 같은 위원인 진성준 의원도 “한마디로 말해 개혁안이 아니다”며 “역시 셀프 개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임을 우려했는데 이런 우려가 사실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진 의원은 “국정원 개혁은 국민과 함께 국회에서 추진돼야 한다”며 “국정원법을 개정하는 경우라면 민주당 동의 없이는 처리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향후 국정원 개혁안 논의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도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셀프 개혁안을 만드는 데 반발해 국회에 국정원 개혁특위를 만들어 여야 합의로 개혁안을 만들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자체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국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자체개혁안은 국정원법 개정 사안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자체개혁안은 조직개편이 핵심인데 현행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정원 조직은 국정원장이 대통령 승인을 받아 정하고 국정원은 필요한 경우에는 차장을 두 명 이상 둘 수 있다’고 돼 있다. 따라서 1·2·3차장의 업무분장 변경과 3차장의 과학기술차장으로의 역할 변경 등은 법 개정 사항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자체 개혁안에서 제시한 계급정년 연장 방안은 국정원법이 아닌 국정원직원법 22조에 규정된 사안이라 국정원법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오히려 민주당이 요구하는 대공수사권 등 수사권과 정보수집 업무의 폐지 및 이관이 국정원법 개정 사안이다. 이 때문에 국회에선 법 개정을 요구하는 야권과 자체 개혁을 통한 업무 효율화를 강조하는 새누리당의 공방전이 펼쳐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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