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81)설령에 익는 미각 명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어항의 아침은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거진항에 닻을 내린 4백여척의 어선들이 3시부터 일제히「엔진」을 걸자 밤새도록 외롭게 깃을 치던 파돗소리는 숨을 죽이고 조그마한 어촌은 잠에서 깨어난다.
어부들이 배 위에서 하루 일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어부의 아내들은 명태낚시를 머리에 이고 어둠 속에서 부두에 나타난다.
이고 온 낚시를 배에 옮긴 어부의 아내들은 무사히 돌아오길 빌면서 품속에 넣고 온 도시락을 남편에게 말없이 건네준다.

<어로선 남하로 어장 좁아져>
선장이 기관실 옆에 달린 종을 두번 치자 만선의 꿈을 실은 어선들은 5척씩 어선단을 짜고 파도를 가르며 바다를 향해 떠난다.
명태어장은 어로저지선(북위 38도30분) 바로 밑. 거진항을 떠난 어선들이 1시간∼2시간 걸리는 곳이다. 원래 명태어장은 함남 신포앞 바다를 중심으로 동해에 길게 형성되어 있지만 주어장은 대부분 군사분계선(북위 38도45분)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부납북사건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군사분계선까지로 되었던 어장은 그후 북위 38도35분45초로 내려왔다가 다시 지난 68년11월25일 북위 38도35분으로 5마일이나 더 남하하고 말았다.
어장에 몰려오는 어선은 거진 4백여척, 속초 7백여척, 대진과 아야진에서 각각 60여척, 그밖에 멀리 부산·마산 등지에서도 올라와 하루에 1천4백여척이 붐벼 어장은 너무나 좁다.
좁은 어장에서 북새를 치다보면 한 어선이 낚시를 드리우고 간 뒤에 다른 어선이 또 낚시를 치고 조류에 밀려 세 어선의 낚싯줄이 한곳에 엉켜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마음씨 나쁜 어부들이 남의 부표를 부수고 그 위에 자기 낚시를 치는가 하면 남의 낚싯줄을 당겨 고기를 낚고 줄을 끊어버려 어취망실이 평균 어선 1척에 10만원에 이르고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작년의 반도 못잡은 흉어>
선주와 선장들은 연간 약1억원에 달하는 어구망실을 막기 위해 자치위원회를 조직, 고의로 남의 부표 1개부를 수면 15만원, 닻줄을 끊으면 30만원씩 내도록 벌금을 매기고 사고가 났을 경우 심판위원회를 열어 조정하고 있다.
『낚싯줄이 많이 끊기기 때문에 실제 낚시에 물린 명태의 반만 건지고 나머지 반은 수장되고 있는 형편이라고 심판위원 김인수씨(46)는 안타까와했다.
낚싯줄이 엉키고 잘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일호 낚시 선원 김용수씨(51)는 낚싯줄을 46초로기(6천9백m·낚시바늘 1만2천1백개)나 갖고 갔으나 반만 드리우고 명태가 낚시를 물 겨를도 없이 거두는 바람에 지난 24일 6급(1백20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잡아 온 명태 값에서 그날 경비를 제하고 나머지를 선주 3할, 선장과 기관장이 각각 1.5할, 선원 4명이 1할씩 나누기 때문에 지난 10월부터 4만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재건호 선원 양응광씨(46)는『구정이지만 그동안 낚시에 밥을 낀 아이들에게 낚시걸이 값조차 주지 못했다』고 언짢아했다.
좁아진 어장과 어구손실로 올해 명태잡이는 흉어, 거진어협에 의하면 1월24일까지 어획고 7백66t은 지난해 같은 기간 1천5백t의 반정도 밖에 안되며 속초시 동해어로 지도본부 집계에도 올해 총어획량(1월27일 현재)은 4천9백79.9t으로 지난해 6천3백96.3t의 78%밖에 안되는 실정이다.
생명태 값이 비싸기 때문에 올해 건태 값도 지난해보다 훨씬 비쌀 것으로 업자들은 보고있다.
건태는 크게 나누어 평지에서 말리는 지방태와 높고 추운 산록에서 말리는 영태가 있다. 영태의 대산지는 대관령과 진부령, 수천평의 땅에 덕대(덕)를 2층으로 매고 생명태를 눈 속에서 말린다.

<황태는 추운 고개서 말린 것>
진부령 너머 설악산 밑에 자리잡은 용대덕장은 대지 2천평 위에 10만급(2백만 마리)을 말릴 수 있는 사설을 갖고 있다.
명태를 동해에서 사고 그 자리에서 배를 가른다. 알은 물주가 갖고 창자는 타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트럭」으로 싣고 덕강으로 와 맑은 시냇물에 1일간 담가 염분을 빼고 물기가 살 속에 스며든 다음 두 마리를 한줄에 끼여 덕대에 넌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좋다. 명태 몸이 퉁퉁 얼어붙었다가 마르면 껍질이 잘 벗겨지고 살결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양념이 골고루 잘 먹혀 들어간다는 것이다.
영하 20도 주위에서 보름간만 얼면 빛깔이 노랗게 변하고 통통한 채 마르기 때문에 이것을 노랑태(황태)라고 부르며 최고품으로 팔린다. 용대덕장 관리인 신현수씨(46)는『7년째 덕장을 보고 있지만 올해는 생태가 흉어인데다 날씨마저 더워 건태의 질도 좋지 않고 값은 비쌀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항이 생긴 이래 구점에도 대부분의 어민들이 어장으로 나간 일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속초어협감사 최윤일씨는『예년 같으면 구정때 어대를 받은 어부들이 여름 식량으로 쌀을「리어카」에 싣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나 올해는 전혀 볼 수 없다』고 흉어에 눈살을 찌푸렸다.
구정인 27일 상오 속초항에 머무르고 있는 명철3호 영좌(수석선원) 김영관씨(53)는 풍어기를 올리고 배 1개, 사과 1개, 소주 2잔, 떡 3편을 놓고』명태를 많이 잡게 해 달라』고 안타까이 배 위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 <글 김영휘 사진 장홍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