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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정한 기초연금이 '미실현 기대이익'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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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기자

▶민주당 김용익 의원=“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매년 액수를 늘려나가 2028년에는 하위 70%의 어르신들 모두에게 20만원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위 70%에게만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정부의 수정안은 이보다도 후퇴했다.”

 ▶이영찬 보건복지부 차관=“2028년에 20만원을 받는 건 ‘미실현 기대이익’이다. (정부에서 무상으로 최소 매달 10만원씩 주는 거니까) 저희가 봐서는 주는 것이 좀 적은 것일 순 있어도 (국민이)손해 본다는 개념이 법적으로 권리가 있는 건 아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오간 문답이다. 이 차관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의를 표하면서 그를 대신해 출석했다.

 이 차관이 언급한 ‘미실현 이익’은 이런 거다. 1000원짜리 주식을 샀는데 1200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를 팔지 않았다면 수익이 확정되지 않기 때문에 기대수익으로 남는다. 한마디로 아직 판매되지 않아 가치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의 이익이다. 이런 미실현이익은 불확실한 것이므로 당기 손익계산을 할 때도 포함하지 않는다.

 정부가 주기로 약속하고 이를 국회가 법으로 제정한 사안에 대해 장관을 대신해 나온 차관이 불확실한 것이란 식으로 설명한 셈이다. 이에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법의 최고 미덕은 안정성인데 법을 지켜야 할 관료가 어떻게 이런 논리로 국회를 설득하려 하는가. 복지 정책, 공약, 그런 거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정부의 어려움은 이해된다. 버는 돈(세수)은 줄어드는데 쓰는 돈(기초연금)만 계속 늘려 놓으면 나중에 나라살림이 거덜날 수도 있다.

 이런 사정을 국민이 받아들이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함부로 법을 고치는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엄중한 사과와 책임 규명, 그리고 솔직한 설명이다. 그런데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그렇지 못하다.

 이 차관은 “(정부 기여분이 들어 있는)국민연금을 공적 저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의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언급도 했다. 억울하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하지만 억울한 건 그렇게 되리라 믿었던 국민이다.

 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수정안은 결국 법안을 바꾸는 문제여서 국회를 통과해야만 정책으로서 생명력을 갖는다. 장관이 청와대의 수정안에 반발해 옷을 벗은 상황에서 정부는 더욱 진정성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국회 통과 여부는 여론에 달렸다. 미실현 기대이익 같이 어렵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로 설득이 되겠는가.

강인식 정치국제부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