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줄세우기에 … 일본서 설 자리 잃어가는 민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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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일본 오사카(大阪) 건국학교에서 문예제가 열렸다. 문예제는 일종의 학교축제다.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는 한인을 위한 민족학교인 건국학교의 문예제는 지역축제의 성격을 띤다.

 대부분 재일교포 4∼5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들은 한국어가 유창하지 못하다. 하지만 축제를 위해 여름방학 내내 연습해 한국어 연극 ‘흥부전’을 무대에 올렸다. 고교생들은 인터넷과 책으로 조리법을 익혀 떡볶이와 호떡 등 한국 냄새 나는 음식을 문예제 기간에 팔았다. 일본의 민족학교는 한인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한민족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건국학교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조규원(작고)씨에 의해 설립됐다. 건국학교는 일본 교과 과정과 함께 민족교육을 투 트랙으로 가르친다. 건국학교는 76년 대한민국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대 들어 큰 위기를 맞았다.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상위 학교 진학 경쟁이 심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의 서열이 분명하다. 이 학교 최철배 교장은 “외교관뿐만 아니라 민단 간부들조차 자녀를 민족학교에 보내는 걸 꺼리고 있어 재일동포 후손들에게 민족교육을 할 곳이 사라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오사카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 정부 관계자 중 유일하게 자녀를 민족학교인 오사카 금강학교에 보내고 있는 박영혜 문화원장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사실상 일본인에 가까운데, 부모 입장에서 한민족 정체성을 앞세워 자녀에게 민족학교를 강요하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금강학교 성시열 교장은 “일본에서 태어난 이를 부모로 둔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같을 수 있다”며 “금강학교에 오는 이들은 신념을 따라 민족학교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한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성 교장은 “한류 바람이 커지면서 한국에서 직업을 얻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많아졌다”며 “이런 학생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보를 주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학교는 한국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 교육부와 대학에 진학설명회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미국·중국·일본·러시아·카자흐스탄·독일)=장세정(팀장), 강인식·이소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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