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성공한 비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경북 영덕에서 자영업을 하는 전길봉씨는 지난달 26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오스트리아 현악4중주단 ‘하겐 콰르텟’ 연주를 즐겼다. 전씨는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을 영남에선 별로 볼 수 없다. 서울까지는 너무 멀고. 조금 거리가 있지만 대전에서라도 명품 연주를 듣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유진우씨 역시 비슷한 이유로 대전을 들렀다. 그는 다음 달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베를린필 수석 첼리스트 마르틴 뢰어의 공연도 예매해 놓았다.

 1일은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하 대전예당)이 출범 10년을 맞는 날. 2003년 10월 1일 문을 연 이후 대전예당은 지방공연장의 대표 주자로 정착했다. 2004년 뉴욕필, 2005년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 2010년 헬무트 릴링 합창단 등 지방에선 접하기 힘든 세계적인 예술단체의 내한 무대를 성사시켰다. 공연계에선 어느새 서울 다음에 대전을 거치는 게 하나의 일정처럼 자리 잡혔다. 2005년엔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 공연을 단독 유치하기도 했다.

 어떻게 대전예당은 명품 공연을 꾸준히 올릴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지역 예술단체를 분리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10년 전 개관 당시 대전엔 오케스트라·합창단·무용단·청소년 합창단 등 시립예술단체가 4개 있었다. 공연장이 생기니 지역 예술단체도 당연히 그 우산 아래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대전예당은 “빠듯한 예산으로 대전시민을 만족시킬 만한 외부 공연을 데려오기도 어려운데, 지역 예술단체를 포함시키면 서로를 갉아먹게 된다. 대전시립 예술단체는 현재처럼 대전시에 소속되는 게 맞다. 각각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며 비제작 극장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여타 지역 공연장이 현지 예술단체를 끌어안으며 허덕거리는 모습과는 다른 행보였다.

 성공의 또 다른 키워드는 이른바 ‘1:1:1’의 원리였다. 대전예당의 초창기 1년 예산은 100억원. 시설운영비, 인건비, 공연기획비로 정확히 3등분했다. 이를 10년째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예산이 감소해도 뚝심 있게 1:1:1의 원리를 지켰다. 일반적인 공연장이 예산 감소를 이유로 우선 손대기 쉬운 공연 기획비부터 줄이는 것과 달랐다. 이용관 관장은 “공연의 질이 떨어져 한번 관객의 외면을 받으면, 그걸 돌이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가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 대전예당의 10년은 지방 공연장의 모범적인 생존 방식을 보여준다. 지역문화단체도 이제 예산·관객 타령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