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판 '3종 세트' 남의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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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이 재정적자 때문에 해마다 3번의 진통을 치르고 있다. 첫 고비는 예산안이 통과되는 매년 2월의 시퀘스터 홍역이다. 재정적자가 일정 부분을 넘지 않도록 연방정부의 새해 예산을 자동으로 삭감하는 제도다. 이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도 연말에는 재정절벽이 기다리고 있다. 경기부양용 세금 감면이 종료되고 정부 지출이 삭감되면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위기를 맞는 것이다. 이 고비를 넘겨도 안심할 수 없다. 예산이 바닥나면 언제든 연방정부가 폐쇄(shut-down)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건강보험 관련 예산의 진통으로 18년 만에 정부가 폐쇄될 위기에 몰려 있다.

 시퀘스터·재정절벽·정부 셧다운의 미국판 ‘3종 세트’를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재정이 나빠지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극약처방이다. 재정확대에 인위적인 지붕을 씌워서라도 국가 부도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 채무도 위험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내년 나랏빚은 515조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8.5배나 증가한다고 한다. 우리도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복지공약과 가파른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언제 미국식 3종 세트를 도입해야 할지 모른다.

 정부가 이번에 ‘번 만큼 쓴다’는 ‘페이고(PAYGO·Pay As You Go)’ 원칙을 도입한 것도 이런 위기의식의 반영으로 보인다. 재정확대나 감세 법안을 낼 때 재원대책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페이고’만으로 재정건전성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식 3종 세트의 비극을 피하려면 보다 강력한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다. 우리도 여야 합의에 의해 재정확대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리부터 예산 증가율이 실질경제성장률보다 일정 비율 이상 넘지 않도록 강제로 지붕을 씌우는 것이다. 기획예산처를 부활시키는 방안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처럼 기획재정부가 대선 공약 이행에 치중하면 산하 부서인 예산실은 견제 기능을 상실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차라리 기획예산처로 독립시켜 재정건전성을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