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후 10일 넘은 수표 못쓴다”판결|상 관습 무시한 사법 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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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분실 신고가 된 자기앞수표(보증수표)를 받고 TV를 팔았던 상인이 낸 수표 금 청구 소송에 대해 서울 민사 지법은『원고는 수표가 발행된 날로부터 10일이 지난 다음 은행에 제시했으므로 소구 권이 소멸된다』고 판 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수표 유통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서『모든 수표는 발행 후 10일이 지나면 돈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현행 상 관습에 따라 사고 계 출 이 없는 수표는 10일이 지나도 은행에서 돈을 내주며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혼선이 일어난 것은 평소에 우리가 법규정을 갈 모르고 있는 데다 법규 자체가 실제 운용 과정에서 다소 변질되어 새로운 상 관습을 형성하게 된 결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법원의 판결이 이러한 관례를 무시한 채 과도히 법규정에만 집착, 현실과 유리된 해석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현행 수표 법에 의하면 수표는 발행한 날로 부 터 10일 안에 지급 제시(지불 청구)를 하게 돼 있다. (기조1항) 그리고 이 기한 안에 지급 제시를 했는데도 지불을 거절당하면 소구 권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법원의 판결은 바로 이러한 소구 권에 관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지급 제시 기한이 지난 것이기 때문에 소구 권을 인정받지 못한 것일 뿐 근본적으로 발행인의 채무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발행 한지 10일이 지나면 은행은 수표에 대한 지불 의무에서 벗어나며『지급 제시 기간 경과』라는 부전을 붙여 지불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절당한 수표는 수표법 63조에 따라 이득 상환 청구 소송을 재기 할 수 있으며 이 소송이 제기되면 지불 기간 경과만을 이유로 지불을 거부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소지인이 이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수표의 지급 제시 기간(10일)이 경과 됐어도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은행이 이를 지불하는 것은 관례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지급 제시 기간이 경과, 이득 상환 청구에 의해 지불 행위가 이뤄지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수표의 법정 지불 기간을 10일로 짧게 잡은 것도 수표가 신용 증권이 아니고 지급 증권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빠른 시일 안에 현금과 바꾸도록 촉구하는 것이 수표 제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63조에 따라 이득 상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은행이 패소할 경우를 관례로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리적으로「자기앞 수표」의 지급이 늦어지는 만큼 현금이 은행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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