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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화사의 체계화|정치학교수 이용희박사의 이례적 업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수안 고서화 수장 가의 한사람인 이용희씨가 처음으로 본격적인 한국 회화 사를 집필했다. 법학박사로서 서울대에서 국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 교수는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학계 인사들이 미처 해놓지 못한 우리 나라의 1천5백년 회화 사를 독자적으로 정리해 체계를 세워 놓음으로써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백자 원고지 6백장에 달하는 그의 논문은 고대「민족문화 연구」가 내는 최근호 민족문화연구(제4호)에 부록으로 하여 최순우씨의『한국 공예 사』와 함께 게재 됐는데 이들 논문은 동 연구소 발간의『한국문화사 대계』풍속·예술 편에서 누락됐던 것의 별쇄이다. 정치학자로서의 이 박사는 이 미술사에서 자신의 본명을 숨기고「이동주」라는 필명을 썼다.
이번 논문이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기에는 부족한 분량임에도 우리 나라 회화사상 체계 있는 것 회화 사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하나 하나의 그림을 미술사가로서 평가하고, 그래서 상식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검토했다는데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지금 고서화 부 면의 미술사가는 몇 사람밖에 손꼽히지 않으며, 또 이 부 면의 저서나 논문도 그리 많지 않다. 근래 책으로 간행된『근 역 서화 징』(오세창 편)『한국회화대관』(유복열 편저) 등은 사전에 불과한 것들이고『조선화론 집성』(고유섭 면)은 이조 때의 사료를 모아 놓은 것이다.
또 윤희순·근원·김영기·이경성·김원용 제씨가 각기 미술사 혹은 회화개론에서 다룬 바 있으나, 역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정도의 개설에 그쳤다.
그밖에 최순우·이동주 양씨가 역대 교가의 작가론을 손 것이 더러 있으나 단편적인 개인 연구에 불과하다.
이 박사는 우리 나라 회화 사를 ①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②고려 ③이조전기 ④중기 ⑤후기의 5구분을 했고, 회화 미에 대한 그 시대의 기준을 중심으로 기술했다. 그는 옛 문헌이 나선 배의 서정을 인용하지 않고 오히려 현대의 입장에서 원 화를 이해 하려하고 그래서 회화사적인 해석을 돕기 위해 1백여 폭의 작품을 도 판으로 소개했으나 역시 인쇄가 나쁘고 숫 적으로도 부족한 편. 다만 작품의 소장 자를 밝혀 놨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보충을 한 샘이다.
학생 시절부터 서화를 수집하기 시작하여 현재 수백 점의 귀한 작품을 간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박사는 회화사의 정리가 정치학보다 드리어 보람으로 어기는 전공이라고 한다. 그는 10여 년 전에 우리 나라 문화재를 미국에서 순회 전시할 때 회화 작품의 선정위원이었고 또 2∼3년 전엔 신문과 잡지에 역대의 명화가 논을 연재로 발표한바 있다. 뿐더러 그는 국내 것은 물론 일본·미국 등지에 있는 그림마저 두루 볼 기회를 가졌었다.
이번 논문은 그런 오랫동안의 준비 작업을 바탕으로 한 회화사의 첫 시론이 되는 샘이다. 작품세부에 걸쳐 상론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서두에서 한국회화의 특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한마디로 천연·천 진이라고 할 수 있는 면이 두 들어 진다. 여기 천진·천연이라는 개념은 인공·정교와 대립되는 의미로만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자연과 인간의 조건에 순종하면서 현실감각을 담아 즐기는 태도라 할까. 인공의 정교 감과 완전성을 찾느니 보다 현실과 자연경관의 불완전 감을 그대로 즐기는 것과 같은 조형의 미완성 감을 꺼리지 않는다….』
즉 정형화한 남-북 종의 산수를 모작하더라도 한국의 풍토미가 가미됐고, 성공한 것보다는 실패작에서, 흔히 한국적인 것을 엿 볼 수 있으며 매섭고 야무지기보다는 어수룩한 별 취로서 소박 주의가 이조영·정조간에 황금시대를 이루었다고 그는 이 논문에서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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