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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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남영호의 침몰사건은 구슬픈 세모를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3백62t이라면 1860년대에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너간 일본 배와 비슷한 무게이다.
콜롬부스나 마젤란이 탔던 목조선, 또는 메이·플라워 호들은 모두 3백t정도로 되지 않았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때엔 물론 무전기도 구명대도 없었다. 그저 작은 보트 두어 척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난사고로 많은 사람이 몰살한 일은 별로 없었다. 원래가 배의 안전도는 자동차·기차·비행기 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세기 이후에는 원인불명의 폭발사고로 l천명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타이타닉 호 사건을 제쳐놓으면 선박사고로 수십 명씩이나 떼죽음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기엔 여러 가지 까닭이 있다. 우선 레이다 장치를 갖추게 된 이제는 해상의 충돌사건이 거의 없어졌다. 막상 조난 당해도 실지로 침몰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의 여우가 있다. 따라서 구조의 가능성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2, 3백 명씩 승객이 죽는 일이 우리 나라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것도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연안 항 행 선들이 일으킨 사고들이다. 창경호 때보다 더 큰 참사인 이번 남영호는 표류한지 20분 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노후 된 무전기로나마 SOS도 분명히 쳤다. 적어도 먼 곳에 있는 일본에서까지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을 우리 나라에선 10시간 후에야 알게 됐다. 사고 당시 바다도 조용했고, 정원·적재량 초과도 아니었다 한다. 분명 천재이변은 아니었다면 마지막 책임은 역시 사람에게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
아무리 정비를 잘해도 사고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배가 가라앉는다는 것은 그리 창피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얼마든지 구조할 수도 있던 인명을 3백 명 이상씩이나 죽음 속에 방치된 채 10여 시간씩이나 아무도 모르고 있는 이번과 같은 사태는 우리 나라에서만 있다는 것처럼 낮 뜨거운 일은 없다.
해사관리가 얼마나 엉망이었으면 쉴새 없이 타전한 SOS를 캐치하지 못했으며, 10시간 후에도 사고를 모를 수 있었느냐 말이다. 분노와 통곡은 유족들에게서만 터져 나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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