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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절반 "학생들 인성,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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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성교육이란 게 학교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점수로 매기면 10점 만점에 1점 정도. 앞으로 나아지긴 할까요? 악화되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서울 강서구 학부모 김모(43·여)씨)

 “우리 사회가 인성을 강조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1등 해서 명문대 가는 것만 앞세우다 보니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빈사상태죠.” (서울 강동구 A중 3학년 담임교사)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와 교사의 상당수는 중학생들의 인성이 앞으로 나아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부정적이었다.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어른들의 삶조차 더욱 각박해지면서 인성교육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희대 교수 7명과 본지 기자들이 서울·경기지역 교사·학부모 37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맞벌이로 일하다 보니 아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쓰죠. 요즘엔 대화도 잘 못하겠고.” 중3 아들을 둔 전모(45·여·서울 중구)씨는 “조금만 잔소리를 해도 아들이 짜증내니 어디서부터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기력하긴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서울 관악구 B중의 한 교사는 “괜히 혼내기라도 했다가 학부모가 항의하면 골치만 아파진다”며 “아이들이 잘못해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넘어가는 게 속이 편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태는 16개 시·도 중학교 교사(232명)·부모(353명) 표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교사들의 절반(48.3%)은 학생들의 인성이 향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의 인성교육 풍토에 대해서도 58.6%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교사들은 인성교육이 힘든 학교 여건을 이유로 들었다. “국·영·수 위주로 수업이 빡빡하게 짜여 있어 인성교육은 엄두도 못 냅니다.” 서울 강북구 C중의 3학년 담임교사는 “부모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는 건 성적과 입시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과목을 편성해 집중적으로 수업하는 집중이수제 도입 이후 입시 과목만 수업 시간이 크게 늘었다. 교육업체인 이투스청솔이 집중이수제 도입 전인 2010년과 2013년 서울지역 중학교(358곳) 수업시수를 분석해 보니 영어와 수학은 연평균 각각 18시간, 12시간 증가했다. 반면에 도덕은 23시간, 음악은 12시간 줄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진해 교수는 “이미 중학교 때부터 모든 교육의 초점이 입시에 맞춰져 있다”며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전인교육은 학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성교육이 제도화돼 있지 못한 것도 문제다. 표본조사에서 교사들의 42.3%는 학생 인성교육을 위한 연수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학부모들도 현재 학교의 인성교육에 대해 40.2%가 부정적이었다. 중1 자녀를 둔 박모(45·여·경기도 고양시)씨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나 제도가 학교에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D중 3학년 담임교사는 “한 학기에 한두 번 동영상을 보는 게 전부”라며 “평소 수업시간엔 진도 나가기 바빠 인성교육에 힘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사들도 인성교육의 필요성엔 매우 공감했다. 표본조사에서 교사들의 93.1%가 성적보다 인성이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서울 신현중 김재옥 교장은 “단순한 지식은 인터넷이나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과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진곤 교육대학원장은 “교사들이 해당 교과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일깨워주는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대학 교육과정과 필기 위주의 교원 임용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성시윤·윤석만·이한길·김혜미·이서준 기자
◆경희대 연구팀=정진영(정치학)·김중백(사회학)·김병찬(교육행정)·성열관(교육과정)·지은림(교육평가)·이문재(현대문학)·김진해(국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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