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폭발사고 … '교과서 경찰관'의 안타까운 순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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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고 남호선 경위(左), 고 전현호 경사(右)

경찰 생활 24년간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29차례 수상. 철저히 원칙을 따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교과서 형님’. 동료와 선후배 경찰들이 “아무리 피곤해도 근무 중에는 순찰차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쪽잠’조차 절대 자지 않었다”고 하는 인물….

 이런 경찰이 순직했다. 깊은 밤 순찰을 돌던 중 폭발사고를 당해서다.

 대구 남부경찰서 남대명파출소의 남호선(52) 경위. 그는 지난 23일 밤 11시에 도보 순찰을 나섰다. 45분 뒤 남구 대명6동 주택가 골목을 살피고 상가 건물 근처에 이르렀을 때, 상가 1층 액화석유가스(LPG) 배달업소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남 경위와 함께 순찰을 돌던 전현호(39) 경사도 순직했다.

 남 경위는 1989년 28살에 경찰(순경)이 됐다. 그와 함께 일한 남대명파출소 김광수(55) 경위는 남 경위에 대해 “성실함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단 한 번 지각하는 일 없이 늘 10분 일찍 나와서는 묵묵히 맡은 일을 했다. 50살이 넘어 고참이 돼서도 파출소에서 제일 골치 아파하는 음주 난동객 처리를 후배에게 떠넘기는 일이 없었다. 91년 ‘우수 순경’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도 성실함을 인정받아서였다.

 동료들은 또 그를 “인정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면 달려가 뒤에서 밀어주고 음료수를 사서 건넸다. 올 2월 남 경위가 추위에 떨고 있는 치매 노인 2명을 파출소에 데리고 와 가족을 찾아줬을 때였다. 동료들이 “미담 사례로 상급 부서에 보고하자”고 하자 그는 “경찰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런 그에 대해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인정이 넘치는 남 경위가 틀림없이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81)와 부인(48), 1남1녀가 있다.

 함께 순직한 전 경사 역시 1998년 경찰이 된 뒤 20차례 수상한 모범 경찰관이다. 유족으로 부인(33)과 2남이 있다. 경찰은 24일 남 경위를 경감으로, 전 경사를 경위로 각각 1계급 추서했다. 영결식은 26일 남부경찰서 내에서 대구지방경찰청장(葬)으로 치른다.

 두 경찰을 숨지게 한 폭발사고로 시민 13명이 부상하고 차량 13대가 파손됐으며, 주변 식당 등 30여 곳의 유리창과 간판 등이 부서졌다. 경찰은 LPG 배달업소 내 용기 연결관에서 가스가 새어 나와 폭발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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