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婚[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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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뜻의 글자 ‘婚(혼)’은 ‘女’(계집)와 ‘昏’(저녁)을 합쳐 만들어졌다. 원래 ‘女’ 없이 ‘昏’으로만 쓰이다 나중에 ‘女’가 더해졌다. ‘昏’은 해가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는 형상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해가 지고 밤이 오기 전의 어스름한 시간이다. 황혼(黃昏)이라고도 한다. 고대 여자가 결혼하기 위해 집을 나서던 것이 바로 그때다. 시집가는 길에 밝은 달이 떠 길을 비추면 ‘광명의 행복한 길을 간다(光明幸福之路)’고 하여 길(吉)한 것으로 여겼다.

‘시집간다’라는 뜻을 가진 ‘嫁(가)’는 ‘여자(女)가 남편의 집(家)에 들어간다’는 뜻이 모아져 만들어졌다. 해거름에 친정에서 나온 신부가 신랑 집 문턱을 넘으면 결혼은 성사된다. 그래서 신랑 집 문턱을 넘지 않은 여인을 황화규녀(黃花閨女)라 했다. 황혼에 핀 꽃 같은 아가씨라는 뜻이다. 이 말은 오늘 날에도 ‘숫처녀’라는 의미로 쓰인다. 황화규녀가 신랑 집 문턱을 넘으면 ‘婦(부)’가 된다. 여기에서 ‘?(추)’는 빗자루를 상형한 글자다. 신랑 집 문턱을 넘은 여자는 곧 빗자루를 들고 집안 청소를 하는 사람, 즉 부인이 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오늘날 우리 세대보다 더 혼례를 중시했다. ?예기(禮記)?에는 당시의 결혼 예절을 보여주는 ‘혼의(昏義)’편이 있다. ‘혼의’는 첫 구절에서 이르기를 ‘혼례라는 것은 두 성이 만나 어울려(二姓之好), 위로는 종묘를 모시고(上以事宗廟), 아래로는 후대를 잇는 것이다(下以繼後世也). 고로 군자는 혼례를 중시한다’고 했다. 또 이르기를 ‘무릇 바르고 신중하게 혼인 관계를 맺어야 예에 어긋나지 않는다. 남녀의 구별이 있어야 부부간에도 의가 살아난다(男女之別, 而立夫婦之義). 부부간의 의가 있어야 부자가 유친하며(夫婦有義, 而後父子有親), 부자유친 해야 임금과 신하가 올바르게 된다(父子有親, 而後君臣有正). 그래서 예부터 이르기를 ‘혼례라는 것은 예의 근본(昏禮者, 禮之本也)’이라고 했다. 혼례가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기본이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결혼은 신성한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혼외(婚外) 정사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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