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중국 예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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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과의 점심 약속에 나갔더니 그가 보고 있던 책을 덮으며 맞이했다.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정글만리』였다. 이 책을 쓴 조정래 작가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중국인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자신의 현지 취재 경험을 술회했다. 요즘 한국 식자층 사이에서 공감을 얻는 ‘중국 독해법’이다. 중국은 나름대로의 복잡성과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니 외부 잣대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방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데 익숙한 한국 사회에 대한 경종일 것이다. 중국은 나름대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고, 나름대로 인권에 대한 이해가 있으며, 중국 정치풍토에 맞는 나름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은 ‘뭔가’ 다르다는 거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1992년 한·중 수교 후 한국은 중국의 민주화나 인권 문제에 일절 침묵을 지키고 오로지 장사에만 열중했다.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걸 건드리지 않는 게 비즈니스에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매년 한·중 수교 기념일에는 꼭 빠지지 않고 교역량 증가 추세가 등장한다. 마치 그것이 한·중 관계가 제대로 돼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지표처럼 말이다. 일주일에 800여 편 넘는 항공기가 두 나라를 왕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양 국민이 그만큼 가까워졌음을 입증하는 듯하다.

중국의 속내를 정말로 이해하려면 중국이 19세기 초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았던 이른바 ‘100년 오욕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며 중국인들이 서방에 대해 느끼는 피해의식을 감안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런 시각들은 하나같이 ‘중국 예외론’을 지향한다. 20세기에 유행했던 ‘미국 예외론’과 유사하다. 미국 예외론은 미국을 역사의 보편적 발전 과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관념이다. 미국인들이 유럽을 대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려고 만든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예외론’은 국제관계의 평등성을 소홀히 하고 다른 문화적 접근 시각을 경시할 위험성이 크다. 한국에서 확산되는 ‘중국 예외론’은 ‘미국 예외론’을 대치하려는 21세기적인 발상일 수 있다. 달리 보면 중국 예외론을 인정한다는 것은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 예외론’처럼 ‘중국 예외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안이한 자세다.

요즘 중국 대륙에선 중국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몰상식한’ 외국인이 되지 않으려고 중국 입장을 애써 이해해주려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그중 한국인 숫자가 월등히 많은 게 사실이다. 심지어 ‘중국을 배워야 한다’는 책을 쓰러 온 전직 정치인도 있었다.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거나,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가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권위주의적 경제발전론은 한국도 시도해보았고, 집단지도체제는 고대 로마도 해보았다. 동서고금 역사에서 결코 예외적인 게 아니다.

결국 중국이 예외라는 것 자체가 비(非)이성적 편견이다. 조정래 작가는 “한국의 향후 30년은 중국에서 결판난다”고 강조했다. 그 말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한·중 관계를 살피느라 한국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외교 스타일로 중국을 대할 때 한국은 30년 후에 정말 결판이 날 수 있다. 중국은 크고 강하고 당당한 것을 존중한다. 그것이 중국이 존중해주는 ‘예외’다.

boston.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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