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한 이유 불문하고 이산가족 상봉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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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모처럼 길었던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 북한으로부터 유쾌하지 못한 소식이 있었다. 이번 주 예정됐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밝힌 사유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뿐이다. 통일부는 즉각적으로 ‘반인륜적 행위’라는 비난 성명을 내고 조속히 상봉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조평통은 남한 정부를 “반인륜 범죄자들”이라고 맞받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상봉을 기다리던 팔순의 부모·형제·자매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태도였다. 통탄할 일이다.

 조평통이 밝힌 상봉 행사 연기 이유는 ‘남조선 보수 패당의 악랄한 대결소동’이란다. 그 예로 든 게 최근 남북 관계 개선 움직임이 남한 정부의 ‘원칙론’이 성과를 거둔 것으로 ‘떠들어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성의 있는 노력의 결과’임을 무시한 ‘파렴치한 날강도 행위’라는 것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태다. 남북 관계 진전의 공을 독차지하겠다는 어린애 같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조평통은 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을 두고 ‘진보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와 관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만일 이 의원 등이 북한과 직접 연계된 사실이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오히려 북한이 사과해야 할 일 아닌가. 조평통 말대로 북한과 무관하다면 그렇다고 밝히든지 아니면 가만있으면 될 일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미룬 북한의 속내에 대해선 이런저런 추정이 나온다. 대체로 금강산 관광 재개나 6자회담 개최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화풀이를 해댄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속이 좁아도 한참 좁은 행태다. 어디 화풀이할 데가 없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분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나.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일보다 외화를 버는 일이 훨씬 중요한 모양이라는 비아냥이 공연히 나오는 게 아님을 북한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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