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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지금 여기'를 넘어 이상향 잇는 영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김경화 도쿄대 조교수가 모바일 미디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경은 중앙일보 로비에 있는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의 작품 ‘장영실의 꿈’. 최정동 기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스마트폰은 늘 우리 곁에 있는 필수품이죠. 하지만 단순한 통신 기기도 아니고 TV·신문 같은 언론 매체와도 달라요. 기존 개념만으론 설명할 수 없어요. 도대체 스마트폰은 뭘까요?”

김경화(42) 일본 도쿄대 정보학환(情報學環) 조교수의 물음이다. 정보학환은 전통적 언론 연구는 물론 정보기술·인공지능·미디어아트 등 여러 분야의 학자가 모여 미디어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한국은 전 국민의 67.6%(2012년 말 기준)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 세계 최고의 보급률을 자랑한다. 거의 모든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엉뚱하게 들리는 이유다.

김 교수의 대답은 이렇다. “스마트폰은 새로운 시대의 ‘미디엄(medium)’이 된 겁니다. 전신(電信·telegraph)이 처음 발명됐을 때 시공간의 한계를 넘는 신묘한 기기에 놀란 사람들은 이 기술이 사후 세계와 연결하는 영매(靈媒·미디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죽은 이의 영혼을 부르는 모임 참석자들이 전선으로 서로를 묶고 발전기에 연결한 20세기 초 삽화도 있죠. 스마트폰은 과거에 전신의 발명이 사회에 몰고 온 충격을 넘어서는 도구가 될 것 같아요.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넘어 ‘이상향’과 연결해 주는 역할이죠.”

말로 표현되지 않는 제스처·습관 분석

스마트폰의 겉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이미 안경·시계 형태의 모바일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게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더욱 알기 힘들다.

답을 찾기 위해 김 교수는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모바일 미디어 연구에 인류학 접근법을 적용하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신진 학자 중 한 명이다. 김 교수가 자신의 학부 전공인 인류학에서 찾아낸 방법은 ‘퍼포먼스 에스노그래피(Performance Ethnography·행위 민족지)’다. 에스노그래피는 민족지(民族誌) 또는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라는 뜻으로 문화인류학의 연구방법론 중 하나다. 어느 사회의 고유한 환경에서 사람들의 의식주나 경제·정치·사회 조직, 예술·신화와 같은 특징을 면밀히 관찰해 역사적·지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퍼포먼스 에스노그래피는 이 중에서도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행위, 예컨대 제스처와 습관 등을 관찰해 의미를 찾는 걸 말한다.

“사람들은 전자회사나 통신기업이 ‘권하는’ 방식으로만 스마트폰을 쓰는 게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거나 찾아냅니다. 수십억 명이 늘 몸에 지니고 있는 기기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알기 어렵죠. 트위터 창업자들이 중동의 민주화 혁명을 예상하지 않았지만 현실에서 이뤄진 것처럼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기기와 기능을 원하고, 그게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는 관련 기업과 미디어 학문 연구자들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모바일 미디어로 뭘 하고 있고 뭘 원하는지를 관찰해 답을 찾겠다는 겁니다.”

모바일 미디어 연구에 이런 방법론이 도입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김 교수는 6월 런던정경대(LSE)에서 열린 세계언론학회(ICA) 모바일 분과학회에서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많은 학자가 모바일 미디어를 설명할 새로운 방법론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데 퍼포먼스 에스노그래피도 그런 면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올해부터 일본 문부과학성의 자금 지원을 받아 ‘아시아 지역 모바일 미디어의 문화적 수용에 관한 비교문화적 연구’를 시작했다. 한·중·일 3국에서 모바일 미디어를 어떻게 수용하는지 조사하는 연구다. 자신의 책?세상을 바꾼 미디어?(도서출판 다른)를 출간하기에 앞서 잠시 서울에 온 김 교수를 만나 모바일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동일본대지진과 소셜미디어 관계 연구

그는 구체적으로 뭘 연구한다는 걸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관찰하면 욕구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귀여운 인형 같은 형상과 촉감을 갖추고 사람과 교감하는 거죠. 본인의 생활 스타일에 맞게 맞춤형 정보도 알려줍니다. 학생들과의 공동 연구에서 나온 아이디어인데 일본의 한 통신 기기 회사에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연인끼리 서로의 스마트폰을 각자 자기 것처럼 들여다보며 일상을 공유하는 서비스, 멀리 떨어진 친구와 가족 간에 공간의 한계를 넘어 기념일을 챙겨주며 친밀감을 도모하는 서비스 같은 아이디어도 있다. 너무 일상적이라 사소해 보이기까지 한다.

김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정치적 역할이나 스마트폰이 신문·TV 같은 전통 미디어의 수용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바일 미디어로 뭘 하길 원하는지를 알아내려면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방법이 좋아요. 산업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1년 3월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을 예로 들었다. 그는 대지진과 소셜 미디어의 관계를 인류학적 방법론으로 연구한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당시 사람들이 원한 건 가까운 사람과의 연결을 통한 안도감과 정서적인 교류였습니다. 공공기관이 전하는 효율적인(effective) ‘정보’보다 가까운 가족들과의 정서적인(affective) 소통에서 오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원했던 거죠.”

김 교수는 학문적 연구를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런 흐름을 재빨리 읽고 사업으로 연결한 회사도 있다. 최근 빠른 속도로 일본과 한국,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네이버의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 ‘라인’이 그런 예다. 이 서비스는 네이버 한국 법인이 아닌 일본 법인(NHN 재팬, 지난 4월 LINE주식회사로 분사)에서 개발했다. 처음에는 사진 공유 기능을 강화한 SNS로 개발했다가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욕구를 반영해 개발 방향을 바꿨다. 국내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처럼 전화번호만으로 쉽게 상대를 찾을뿐더러 업체와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모바일 기기에서 쓸 수 있다. 특히 문자뿐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이모티콘)를 활용해 정서를 표현할 수 있도록 공을 들였다. 대지진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2011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해 일본 시장을 휩쓴 뒤 전 세계 사용자가 2억5000만 명을 넘어설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소비자 욕구를 집요하게 분석해 상품개발로 연결하는 이런 방식은 UI(User Interface) 또는 UX(User Experience) 연구로도 불린다. 애플의 성공도 기술보다는 소비자 감성을 파고든 결과다. 하지만 산업계의 관심에 비해 학문 분야의 사정은 좀 다르다. 김 교수는 “아직 미디어 연구는 이론적·학문적 작업인 ‘저널리즘 연구’에 치우친 느낌입니다. 반대로 정보통신 업체는 공학적 기술 연구에 주력하죠. 수많은 소비자 욕구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모바일 미디어엔 미래 열 ‘무엇’인가 있어”

김경화 교수의 경력은 다양하다. 서울대 인류학과 졸업 뒤 그는 국내의 한 일간지에서 6년간 기자로 일했다. 그러다 국내 대형 포털의 태동기에 직장을 옮겼다. 지금은 대기업이지만 2000년 네이버 마케팅 담당이 됐을 때 이 회사 전 직원은 20여 명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2001년 ‘다음’ 전략기획실로 옮겼을 때 다음의 직원은 100명도 안 됐다.

“네이버나 다음이 단순한 기술 벤처기업이 아니라 새 시대의 미디어를 만들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직업을 바꾼다는 생각도 안 했어요. 10여 년 만에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을 제칠 만큼 규모가 커질 줄은 미처 몰랐지만요.”

그는 기업 경영을 배우기 위해 국내 대학의 MBA 과정을 거쳤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고 자신이 맡았던 연구소의 활동이 뜸해지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김 교수는 “큰 조직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혼자 하는 연구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 미디어 연구에 대한 높은 관심과 혁신적인 접근법이 마음에 들어 일본을 택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독특한 연구 분야와 방법론은 김 교수가 속한 도쿄대 정보학환의 학풍이기도 하다. 그가 석·박사 과정을 마친 이곳은 통상적인 대학의 학부나 단과대학과 많이 다르다. 여러 학문을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환(環·영어로는 Interfaculty로 표기)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2004년 신문학(新聞學) 연구소를 주축으로 출범했지만 현재 소속된 100명 가까운 교수들의 전공은 무척 다양하다. 최근 세이가쿠인(聖學院)대 총장으로 옮긴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가 이곳 소속이었다. 정치학자인 강 교수 같은 인문·사회과학 전공자뿐 아니라 인공지능·로봇공학을 연구하는 공학자들, 미디어 아트를 다루는 예술가들까지 모두 한곳에 모여 있다. 하나의 주제를 연구하려고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선다는 측면에서 아시아에선 찾기 힘든 사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 기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미디어 세계를 기존의 언론학, 통신공학, 예술의 틀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의 대상과 방법론에서 기존 방식을 모두 벗어나자는 게 정보학환의 목표이자 학풍이란 것이다.

김 교수는 현재 도쿄대·국제기독대학(ICU)·도쿄예술대학에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강좌를 맡으면서 모바일 미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는 100여 년 전 전기가 처음 일상 생활에 쓰이면서 문명을 뒤바꾸던 당시와 비견될 만큼 급변하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를 열어 줄 ‘무엇’인가가 그 속에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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