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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종교공존 의좋은 교회의 숲|김찬삼 여행기<퉁가 군도에서 제5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호젓한 시골길을 찌르릉 찌르릉 종을 올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노라면 가없는 향수를 느낀다. 밭에서 다소곳이 엎드리고 일하고들 있는 농부들에게 인사를 던지니 마치 안팎의 빛깔이 다른 나뭇잎처럼 손등이 꺼멓고 손바닥이 허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아낙네의 얼굴엔 사랑이 넘친다.
전생의 무슨 인연일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들이다. 풍토는 다르지만 이불이 「아시아」 민족의 피를 이어 받아서 더욱 그렇게 느꼈지는 지도 모른다.
이 나라 명물의 하나라는 하몽석문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데 길가에 앉아있던 외국관광객인 듯한 어떤 여성이 손을 흔든다. 발이 부르터서 걷지를 못하는데 자동차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 그러니 좀 태워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가냘픈 여성이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뒤에 실었던 「룩색」은 지고는 그 여성을 태웠다. 뚱뚱한 편이어서 타이어가 납작하게 붙을 뿐 아니라 앞바퀴가 들리는 듯 한들한들하여 까불기 때문에 운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만일 쓰러졌다가는 큰일이니 잘못 태웠다싶어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태웠으니 기사도 아닌 화랑도를 발휘해야 할 것이 아닌가. 어쩌다 차가 비틀거리면 쓰러질세라 놀라며 나의 허리를 꼭 붙들곤 한다.
뚱뚱한 사람은 아마 겁이 많은 모양인 듯. 꽤 먼 곳까지 이렇게 자전거에 태워다 주느라고 진땀을 빼야했다. 튜브가 빵꾸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나라에는 어찌나 교회가 많은지, 집이 몇 채 밖에 안 되는 곳에도 그 근처에는 큰 교회가 서있다. 이 섬은 깡그리 종교의 대결장소랄까, 감리교·로마·가톨릭·모르몬 교·안식교들이 서로 다투어 신앙운동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미국 우타에 본거지를 둔 모르몬 교회는 물심양면으로 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세계는 지금 사상전쟁보다도 이교끼리의 이른바 종교전쟁이 크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 섬의 여러 종교는 거의 기독교에서 파생한 종파들이긴 하지만 이렇다할 갈등이 없으며 종교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종교의 낙원」이랄까? 이 섬의 동쪽에 있는 어떤 마을에 들르니 종파가 다른 여러 교회가 있는데 그 큰 교회건물에 비기면 신자들은 너무나 적은 것 같고 그 수는 많으니 인구에 비례하여 교회과잉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큰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는 교회가 떠나갈 듯이 쩡쩡 울려 퍼졌다. 이 나라 사람은 몸집이 크듯이 목소리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섬나라 사람들이지만 결코 성격이 옹졸하지 않으며 대륙적인 것 이상으로 호연의 기세가 있는데다가 이들의 종교생활에 뿌리박고 있는 초자연적인 마력을 받드는 마나 사상을 지니기 때문인지 그들의 노래는 입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았다.
신을 찬미하는 이들의 노래에도 니체의 초인주의사상 같은 것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이 섬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스러운 광대한 바다가 이런 성격을 만들어 주었다고 하면 나의 역설일까.
동쪽에 있는 「무하」란 곳엘 갔다. 옛 도읍지로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여기에도 서울과 같은 왕릉이 있는데 보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매우 황폐해 보였다. 그들의 부귀영화는 지금 어디로 갔는지 오직 잡초만이 자라있을 뿐이다.
이 왕릉을 보고는 동쪽 끝에 있는 명물인 하몽석문을 보러갔다. 산호초로 깎아 만 높이 약5m, 무게 약40t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길이 6m가량의 산호초 돌을 가로지른 것이다. 매우 단조로운 것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신사실파의 조각이랄까. 그런 예술미가 있어 보인다.
이것은 11세기 「투이통가」왕의 재위 때 왕궁 안에 불멸의 기념물로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 어떤 고고학적인 학설에 의하면 고대 통가 왕국에서는 역법의 하나로서 하지며 동지에 따르는 태양 면의 이동을 관측하기 위하여 만들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라의 역사는 글로 기록되어 있지 않아 잘 알 수 없으나 옛날에 이미 이들 나름의 문명을 가진 셈이 된다.
이 통가왕국은 날이 갈수록 이상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풍토, 덕성이 높고 선량한 국민들을 떠나고 싶지가않다. 『「이니스프리」로 갈 꺼나!』란 「예이츠」의 시처럼 『「통가」로 갈 꺼나!』하는 서사시라도 쓰고 싶지만 그런 재주가 없는 것이 안타까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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