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6)산호사유택에도 신화의 계급이|김찬삼 여행기<통가군도에서 제4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류의 영원한 안식처라 할 세계의 묘지를 찾아다니는 것은 이색적인「사자순례」나「영혼순례」가 될는지도 모른다. 이 다음에 특이한 세계 분묘 비교론을 하나 써 보려고 여러 나라의 묘지란 묘지는 빼놓지 않고 보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제발 나를「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로 보지는 말아주시기를….
이 나라의 무덤을 알아보기 위하여 우선 왕릉을 찾았다. 이것은 오랜 것이라고 하는데 길이 2∼3m, 높이1m, 두께 30㎝ 가량의 산호초 관 석으로서 3층의 계단식으로 위를 좁혀서 쌓은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무덤은 나뭇가지들을 세우고 텐트처럼 휘장을 친 것도 있는데 이것은 고이 잠자는 유해를 위하여 열대의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것이 아닐까. 죽은 사람에 대한 추모는 문명과 미개의 구분이 없으며 동서고금이 같은가보다.
이 섬은 1년의 강우량이 2천여㎝인데 폭우가 쏟아지면 평탄한 곳이라 물이 잘 흘러내리지 못하여 된다. 그래서 특히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즉은 사람을 묻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 큰 불편을 느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섬은 산호초의 암반으로 되어 있어서 파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변의 흙(산호가 부서진 백사)을 긁어모아 두둑하게 하여 그 위에 관을 올려놓고 흙을 덮는다.
그러나 호산 사이므로 굳어질 리가 없으며 비바람이 치면 시체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래서 지름 30∼40㎝나 되는 큰 조개껍질로 사방을 둘러 쳤으며 어떤 무덤은 맥주병을 거꾸로 꽂아 테두리를 한 것도 있다. 시인「보들레르」가 노래한 것처럼 달팽이가 뒹구는 질퍽한 땅속에 묻히지 않고 깨끗한 산호 사에 묻히는 이 나라 사람은 얼마나 다행한가.
자전거를 빌어서 이 섬을 일주하고 있는데 물이 많이 괴는 어떤 곳에 이르니 원두막처럼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마부를 깐 집들이 많이 보인다.
산이라고는 없고 높은 굿이라야 고작 10여m 높이의 나지막한 언덕이니 무덤 자리를 구하기가 과연 어려울 것 같았다.
주로 시골로 쏘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이 나라 사람은 자기 나라의 신화나 전설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은「폴리네시아」의 창세 신인「타가로아」가 자기나라 섬들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통가」제도 북쪽에서는 해저화산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느닷없이 섬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나라의 시조들이 이곳에 와서 살던 까마득한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화산의 활동이 커서 섬의 출몰이 심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겐 신비스럽게 보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런 신화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닐까. 이 섬들은 신이 바다 밑에서 바위를 끌어올리게 했다든지 또는 하늘에서 바위를 떨어뜨려 만들었다고 하는데 허황한 이야기이지만 해양민족으로서는 이런 신화를 아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받드는 신에는「그리스」나「로마」신화처럼 여러 계층의 신이 있는데 이것은「통가」왕국을 비롯한「폴리네시아」사회의 신분제도, 즉 왕·귀족·평민들로 나뉜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한다.
화산 도는 산이 으례 있으니 물이 자연히 풍부하고 숲이 우거져 있지만 이 산호 도는 그렇지 않다. 이 나라는 예로부터 토지는 추장이 독차지하다시피 했으며 흩어져 사는 이른바 산촌을 이루고 있었으나 18, 19세기에 큰 내란이 일어나서 자연히 모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집단 생활을 하는「괴기」제도와는 달러 개인주의가 발달해 있는 편이다.
토지는 국유지로서 남자가 16세만 되면 정부에서 3ha를 준다. 이 땅엔 주로 야자나무를 가꾸는데 대체로 10「아르」에 8개의 야자를 심으며 심은 뒤 14개월부터 열매를 마니 속성재배나 다름없는 수확일 뿐 아니라, 10여년 동안은 잘 열린다고 한다. 이 열매 속의 하얀 부분을 말린 것이 바로「코프라」인데, 정부에서는 적당한 가격으로 사들임으로써 충분히 생활 보장이 되도록 농촌경제를 유지해나가기 때문에 이 나라 농민들은 태평세월을 노래한다는 것이다.「바나나」의 수출이 이 나라의 재정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코코넛」과 함께 「코프라」도 이 나라의 중요산업의 하나다. 그런데「코코넛」은「필리핀」의 그것과 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충이 들아 잎사귀가 말라붙는 다고 걱정을 하고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