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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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떤 철학자는 인간을 정의하기를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컴퓨터」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이 생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왕자가 마치 중대한 위협이나 받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인간이 10년을 두고 해도 다 해내지 못할 복잡한 계산을 「컴퓨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뜬히 해치운다.
사람이 쏜 화살은 불과 열 발짝 앞의 과녁을 똑바로 맞추는 것도 어려운데「컴퓨터」에 의해서 조종되는 「로키트」는 약 36만㎞ 밖에 있는 달 위의 미리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내려앉을 수 있다. 이리하여, 시대는 바야흐로「컴퓨터」만능의 세상같이 보이게되었다.
공상 과학 소설이나 만화에 보면 소형 「컴퓨터」를 몸 안에 장치한「로보트」가 사람의 할 일을 모두 대신해 줄 뿐 아니라 사람의 능력의 몇 갑절되는 일을 실수 없이 해낸다. 심지어는 지배자인 인간에 항거하여 혁명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일일까? 「컴퓨터」의 바탕은 기억을 하는 데에 있다. 「컴퓨터」에는 수천 또는 수만 개의 기억 소자가 들어있다.
이 기억 소자에 적당한 정보를 저장해 두었다가 사람이 지시하는데 따라 필요한 것을 끄집어내어 지시 된 대로 맞추어 놓는 것이 오늘날의 「컴퓨터」의 하는 일이다.
따라서 「컴퓨터」는 아직까지는 기억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이 지시를 하지 않는 이상 그 스스로는 아무러한 일도 못한다.
또 인간이나 고등동물은 그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스스로 배우고 또한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통하여 유추를 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즉 하나를 배움으로써 둘 또는 그이상의 지식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컴퓨터」에는 이러한 능력은 없다. 하나를 배우면 그 하나를 알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는 「컴퓨터」의 능력이 사람은 커녕 벌레만도 못하다. 인간의 두뇌의 기억소자라고 할 수 있는 뇌 세포의 수는 수억 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20세기의 비약적인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기계에 대하여 덮어놓고 두려워하고 나아가서는 기계에 대하여 열등감을 느끼게 까지도 한다. 그러나 기계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 창조자인 사람의 능력을 온통 대신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기계는 그 창조자인 사람이 부리기에 따라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의 지배 없이는 아무러한 일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창조물을 다루기에 따라서는 우리 인류에게 나 큰 복지를 가져 올 수도 있고 반대로 무서운 해독을 가져올 수도 있다. 예컨대 「컴퓨터」가 사람의 노력을 대신 해서 다른 기계를 움직이고 또는 일상적인 사무를 대신하여줄 수 있다.
반면에 이것을 악용하면 무서운 범죄의 교묘한 계획을 꾸미는 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사람도 어렸을 적부터 잘 길을 들여야 자라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 「컴퓨터」같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는 기계에서는 길들이기 나름으로 충실한 우리의 노예도 될 수 있는 동시에 「프랑켄슈타인」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기계의 지배자이고 기계는 우리의 종이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겠다.
장 세희

<서울대 문리대 교수·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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