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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민정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차례>
⑪우정 사회 김진만
⑫동료의식 사회 조동필
⑬협동 사회 조기준
⑭시민정신 사회 서명원
⑮공중도덕
(16)애국의 논리와 윤리
(17)인류애
(18)근로정신

<때> = 10월18일

<곳> = 본사회의실

<참석자>
무순
서명원 (서울대 사대교수·교육학)
이건호 (이대교수·형법학)
한승헌 (변호사)
김성배 (서울시 내무국장)
박영성 (화학노조 위원장)
송지호 (메디컬·센터 간호원)
채영규 (시경 공보주임)
신태희 (서울시 부녀과 지도계장)

<대표집필>
이건호

<건전한 시민정신은 시민사회 발전요소>
시민정신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하였을 때 국가생활이나 사회생활이 크게 발전. 향상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어떤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또 만약 그것이 성숙하지 못한 단계에 있다면 이를 시정하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이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크게 의의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시민사회를 존속케 하는 정신적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8·15해방 이전에는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시민정신의 발현은 없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민정신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점에 관하여는 다소 견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주권이 국민에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라고 해석된다. 이 주권이라고 하는 용어는 자칫하면 오해되기도 쉬우나 그것은 무절제한 권리주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의무이행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국민에게는 무엇인가 시민정신이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바가 있다. 우선 공동생활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고장,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커다란 공동생활체에 속하고 있는 조그마한 하나의 성원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과연 어느 정도의 자각을 하고있는 것일까.

<아직도 크게 작용하는 특수계층의 특권의식>
우리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언제 나라의 주인이 되어본 일이 있는가?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지 못할 때 어찌 시민정신이 올바른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제 통치시대만 회상해 볼지라도 우리국민들은 항거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 시민정신은 날개를 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이 우리국민에게 하나의 타성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사회적으로 지위있는 자가 대로변에서 용변을 하다 경찰관에게 발각되자 이를 단속하려는 행위에 맹렬하게 반격을 가해온 사례가 실무자의 입을 통하여 보고되었을 때, 우리 국민의 시민정신이 어떤 수준에 있는가를 가장 명확하게 인식할 수가 있다. 이것은 이유없는 항변·특권의식·자기중심 등에 근거를 둔 불합리한 행동양식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죄책을 솔직히 인정할 수 없는 자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없는 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반성할 점이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과거의 사실만을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서도 시민정신의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요소들이 아직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례가 있어 그것은 국민 대중들의 동일성 혹은 동질의식에 금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것 없이는 우리는 우리 국민 속에 협동과 참여의 씨를 뿌릴 수가 없으며 따라서 시민정신의 앙양을 실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국립의료원 간호원들이 파업을 감행하여 여러가지 문제점을 나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측에서는 종래 간호원에 대한 처우가 너무나 소홀하였다고 하여 파업을 지지하였고, 또 어떤 측에서는 환자를 희생시키는 태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파업행위를 비난한 바 있다. 그러나 간호원 자신들은 말한다. 『인도주의만을 내세워 간호원들에게 무조건 무제한의 의무조항만을 요구하는 것은 과연 올바른 시민정신의 발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요컨대 일방적인 권리주장 일방적인 의무이행은 건전한 시민정신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권리와 의무가 공존하는 그리고 모든 국민이 평등한 개인으로서 처우되는 제도와 조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도 이 점에 있어 인식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병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환자일 뿐이다. 환자들의 사회적 지위·금력 등이 서로 어떻게 다르든 간에 의사나 간호원들은 그들을 완전히 평등하게 처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력과 권력이 우세한 환자들은 언제나 특수한 취급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특권의식은 바로 시민정신과 정반대의 편에서는 것이다. 특수취급을 요구하며 기대하는 환자의 예는 오로지 병원 안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나라 여러 분야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권리와 의무 병존하는 공동의식 보편화돼야>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근대적인 시민사회 형성을 위하여 철저한 노력을 집중한 바가 없었다. 8·15와 동시에 돌연 시민사회가 우리눈 앞에 도래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시민정신 없는 형식만의 시민사회가 되고만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정신을 갖춘 형식을 길러 나갈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정신없는 형식만의 시민생활의 실례는 도처에서 우리가 이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 「아파트」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늘었다. 바로 그 「아파트」라고 하는 가옥의 형식은 서양의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형식의 생활을 하는 시민들은 과연 어느 정도 「아파트」생활에 필요한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가.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공동의식·유대감각을 갖지 않을 때 「아파트」생활은 질서와 평온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시민 「아파트」의 실태를 관찰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점을 경고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협조정신 없는 개인주의, 시민생활의 저해 요인>
시민정신의 중요한 일속성이 개인주의 사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칫하면 오해되기 쉽고 그릇 실천되기 쉽다. 가끔 우리 사회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단체생활의 건전한 영위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공동의식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될 필요가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사회생활의 전반에 걸쳐 급격한 발전을 한 바 있다. 더구나 수도서울의 생활상 변모는 눈부신 바가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시민들이 협조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으면 실로 이것은 커다란 「카오스」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개인주의적 생활태도를 전적으로 배격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다같이』공동의식을 가지고 현실에 적응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부당한 힘이 작용할 때는 당당히 저항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정당한 자세의 저항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항이라고 하는 용어는 반드시 『너에 대한 저항』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한 저항』도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너를 고발하며 동시에 나를 고발하는 것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저항』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개인주의적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시민정신의 올바른 형성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태도이다. 그들은 모든 시민을 완전히 평등한 개인으로 취급할 줄 알아야 한다. 자가용차에 관대하고 영업용차에 준엄한 식의 교통 단속 같은 식은 바로 시민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며 이것은 일반국민들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공동의식·유대감각·동일성의 인식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게 하려면 우선 공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일반국민들을 차등 있게 처우함으로써 그들을 갈라놓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생활 속의 밀착화 위해 참여의식 높일 기회를>
모든 국민이 예외 없이 평등한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은 여러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것이 건전한 참여의식을 유발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시민생활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로서 그래도 오늘날의 우리수준은 그렇게 비관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해방 된지 25년밖에 안 되는 우리국민이 그래도 근대적 시민정신을 이 정도라도 체득하게 되었다는 것은 역시 우리국민이 영리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구의 선진국들에 비하여 아직도 우리가 배우고 시정해야 할 점은 너무나 허다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민정신이 그릇 이해되고, 그릇 실천되는 일도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학교교육·교과서적 교육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넓은 의미의 교육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가정·학교 기타 제2차 생활집단의 체험을 통하여 그리고 「매스컴」망의 광범위한 활용을 통하여 시민정신을 올바르게, 그리고 높은 수준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시민정신은 이론으로 시작되어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론이라기보다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 바로 그것이다. 시민생활 속에 시민정신이 깃들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정신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잠시도 정지할 수 없으며 우리의 생활과 더불어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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