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입점 막은 구청장 … 손배 판결에 불복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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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유통조합이 외국계 대형할인점을 유치했다. 부지를 조성해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은행에서 자금도 빌리고 설계도면도 그렸다. 준비를 마친 조합은 건축허가 신청서를 들고 구청의 건축허가 부서를 찾아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에 부닥쳤다. 구청장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이다. 건축법을 어기지도 않았다. 행정절차상 누락된 서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건축허가 내주면 안 된다”는 구청장의 판단에 따라 대형할인점을 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말문이 막힌 조합은 구청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냈다. 법원은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구청장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손해배상소송에서도 3억6700만원을 물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울산진장유통조합과 법정 다툼을 벌인 윤종오(50·통합진보당·사진) 울산북구청장 이야기다.

 윤 구청장은 “중소상인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할인점(코스트코) 건축허가를 내줄 수 없다”며 진장유통조합이 낸 건축허가를 반려했다가 벌금 1000만원과 배상금 3억6700만원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울산지법 민사3부(도진기 부장판사)는 지난 4일 울산진장유통조합이 윤종오(통합진보당·50) 울산 북구청장과 북구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윤 구청장과 북구는 3억6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진장유통조합은 울산시 북구에 코스트코를 짓겠다는 건축허가를 냈다가 윤 구청장이 허가를 내주지 않자 ‘건축 지연으로 10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중소상인 보호라는 공익이 법보다 우월하다는 ‘의견’을 피고들이 가질 수 있지만, 법률을 어겨가면서까지 그 의견을 강행해도 된다는 것은 독선에 불과하다”며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 1월 울산지법은 “구청장의 직권남용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하기도 했다.

 윤 구청장은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9일 윤 구청장은 자신을 지지하는 주민단체인 ‘윤종오 구청장 구명과 지역상권살리기 대책위원회’와 함께 단상에 섰다. 그는 “울산지법이 3억67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냈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기초자치단체장이 법원의 판결에 공식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윤 구청장은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법원이 손해배상 판결을 낸 것”이라며 “법원이 손해배상 근거 자료의 진위를 가리지 않고 일부 금액을 인정한 것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다”고 주장했다.

 진장유통조합 측도 법원 판결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입장이다. 법원이 결정한 배상금이 실제 손해액보다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합 관계자는 “항소를 검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구청장의 법정다툼은 2심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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