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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지상강좌 마련...글 배울 수 있게|세계 10대의 고급지로 품위 없는 기사 안 싣고 못보면 못살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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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사와 함께 걷는 신문-. 그래서 신문은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한다. 문명이 있는 세계도처에 대소의 신문이 있다. 정치비칭에 평판이 있고 혹은 문화의 선상에 서는 신문이 있는가하면 경제번영의 분 아르헨티나의 수도 「패스노아이래스」서 발간되는「라·프렌사」는 세계 최대 고급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중남미 제1의 신문이면서도 농민계몽과 자유보호에 앞장서는 전국지이고 지역사회개발에 이바지 해온 유력지이다.
바로 지난해 10월18일 창간1백주년을 맞았던 「라· 프렌사」지는 1816년「아르헨티나」 독립 후 근 반세기 동안 독재의 공포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국민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자유와 질서와 전진 속에 자유민주국가의 나아갈 길을 부르짖고 나섰다.
창간자 호세·마스씨는 독재정치의 전성기였던 1840년대에 웨스트아이레스 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독재자에 의해서 빚어지는 여러가지 상황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가 27세 되던 1869년, 그 당시 국민의 의사를 호소할 수 있었던「라· 프렌사」지를 설립, 국민에게 알려주고 해설해주고 봉사하는 신문으로 출발했다.
일찌기 1898년 이신문은 의료와 법률상담실을 사내에 마련, 독자와 주민들에게 봉사했으며 의료봉사는 전문가 30명으로 구성, 연간3만5천명 이상이 상담에 응했다.
의료상담과 법률상담은 이 신문이이나라 재2의 독재자 「페른」 대통령에 의해 정간된 1951년부터 중지되었다.1956년 신문의 복간과 더불어 부활, 오늘날까지 완전 무료봉사하 고 있다.
현「라·프렌사」지의 본관 건물은 1899년10월28일 웨스트아이레스의「아베니다 예 마요」가에 의욕적인 설계로 건설되었는데 항시 이 건물엔 많은 사람들이 붐볐으며 창간자의 의도대로 명실공히 『국민의 집』 역할을 했었다. 그 당시 큰 건물이 없던 웨스트아이래스에서는 이 건물은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나「아르헨티나」인들 간에 놀라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라· 프렌사」지의 한세기 동안 언론기관으로서의 활동 중 1934년의 문맹퇴치 캠페인 은 이 신문이 얼마나 국민교육에 관심을 보였던가를 잘 보여주며 세계 언론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지상을 통한 문맹 퇴치운동을 전개했다.
어린이· 젊은이· 성인이나, 공장· 농장·농촌·도시에 관계 없이 어디서나 글을 배울 수 있게끔 치밀한 연구와 계획 아래 지상강좌를 마련했다. 1934년 4월20일 금요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한주일분의 학습내용을 게재, 그해 12월까지 계속했다. 학습내용은 읽기·쓰기·기초적인 지리·역사·산수 등을 교과과목으로 포함 시겼다.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이 신문의 교육지시대로하면 문맹자를 지도할 수 있게끔 자세한 설명과 여러가지 사진과 독해를 고려 교과목를 만들었다. 지상강좌가 시작 된지 4개월이 지나자 수많은 도시와 시골의 문맹자들이 이 지상강좌에 힘입어 글을 배워서 신문사로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에르네스토·안트넬리씨와 안토니오· 코르테스씨가 라· 프렌사지의 지상강좌 지시에 의해 인내심을 갖고 저에게 읽기·쓰기·산술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옵니다. 벌써 더하기·빼기를 할 줄 알며, 지금 편지를 쓰는 것 같이 쓰기와 라· 프렌사지를 읽기까지 합니다. 라·프렌사지 편집인·사장님께 국민을 위한 숭고한 정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후카스· 오카리스 올림이 캠페인을 계기로 수많은 농촌지역에서 「라· 프롄사」 지가 고안한 교과과목을 사용하는 집단 공민학교가 생기고, 이 캠페임이 끝난 뒤에도 각 지방신문은「라·프렌사」지의 교과과목을 복사해서 각 지방별로 문맴퇴치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에콰도르 ·페루 등의 이웃나라들도 이 교과 방법을 그들의 문맹퇴치에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캠페인을 계기로 시골에 수많은 국민학교가 설립되고, 국민교육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라· 프렌사」지는 명실공히 가족신문이라 할 수 있다. 창간자 호세·마스씨의 이름 에세게엘·파스씨가 2대 사장직을 맡았으며 현 사장 알베르트·파스씨는 창간자의 손자이며 에세게엘·마스씨의 아들이다.
이 신문은 중류층 이상의 독자를 많이 보고 있으며, 「스캔들」 기사와 같은 품위가 없는 기사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평일엔 38∼42면을, 일요일엔 90∼100면의 신문을 제작하며 평일엔 25만부, 일요엔 30만부의 발행붓수를 갖는다. 이 발행붓수의 7O%가 수도 웨스트아이레스지역에 공급되며 나머지 30%는 각지방으로 분산 공급된다.
일요일의 일요관엔 세계굴지의 작가들이 쓴 작품을 소개, 많은 지성인들이 애독자로 돼 있다. 보통 하루 4∼5 제목의 사설을 취급하며 신문의 제 일면부터 끝면까지가 마치 한 필자가 기사를 쓴 것처럼 보이며, 쉽고,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새로운 맛을 주는 신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도의 「아베니다 데 마요」 5백 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라·프렌사」지의 건물 꼭대기에서 있는 언론자유의 여신상 (오른손엔 횃불을, 왼손엔 신문을)은 라·프렌사지 외 설립이념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항상 헌법을 수호함으로써 국민의 자유를 지켜왔고 이 나라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의해서 고군분투 해온 신문이다.「페론」독재주의에 항거, 1951년에 폐간을 당하던 쓰라림은 이를 갈 말해준다. <이성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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