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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공동체 이루는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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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오인숙(34)씨가 로컬푸드 전문점에서 고추를 고르고 있다. 오씨는 신선하고 저렴한 로컬푸드로 매일 유기농 식단을 차려 먹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운송거리가 50㎞ 이내인 식품을 ‘로컬푸드’라 부른다. 푸드 마일리지가 짧을수록 식품 본연의 신선함과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 ‘현지 직배송’ 시스템이 선호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푸드마일리지를 ‘0’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채 직접 키운 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로컬푸드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꿀벌이 날아다니며 벌집을 만들고, 염소와 닭이 우리 안에 모여 살고, 벼가 논에서 무르익고, 고추와 가지가 영글어가고…. 시골의 한 정취가 아니다. 놀랍게도 서울 도심 속 풍경이다. 강동구청 주민들이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8975㎡ 면적의 공동체 텃밭이다. 이곳에는 상추·부추 등 쌈채소부터 감자·콩나물·치커리·쌀 등 각종 작물이 자라나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5시. 뙤양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물을 주고 있는 주부 임민옥(여·52·고덕동)씨는 보름간 자란 어린 배추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흐뭇해 했다. 그는 이날 저녁 가족에게 해줄 반찬거리를 ‘얻기’ 위해 이곳을 들렀다.

 임씨는 10㎡ 남짓한 텃밭에서 배추·쑥갓·열무김치·상추를 심었다. 지난 3월 강동구청에서 무료로 텃밭을 분양 받았다. 앞서 한차례 가지·고추·오이를 키워 수확한 뒤였다. 임씨는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며 채소를 고르는 시각부터 달라졌다. 벌레 먹은 잎을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됐다. 임씨는 “예전엔 마트 가면 벌레 먹은 것은 무조건 사지 않았다. 직접 키워보니 벌레가 먹은 건 그만큼 맛을 증명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특히 벌레는 새싹을 가장 좋아하는데, 새싹이 가장 맛있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사는 임씨는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찾는다. 작물을 관리할 겸 그때마다의 식사용 반찬거리를 따가기 위해서다.

생산자명(박종태)이 적힌 로컬푸드 호박.

 “마트에서 파는 유기농 채소도 좋겠지만 직접 재배한 것보다는 유통과정이 길잖아요. 땅에서 캐서 바로 해먹으면 요리 맛부터 달라지더라고요(임씨).” 임씨는 텃밭을 가꾸며 인생의 묘미도 느끼고 있다. 욕심을 부려 물을 많이 줘도 더 빨리 자라지 않는다. 자연의 순리에 맡기며 기다려야 한다. 마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비춰본다. 임씨는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소소하게 작물을 키우면 나 자신부터 힐링된다”며 이를 두고 ‘3평(10㎡)의 힐링’이라 표현했다.

 서울 신당동에 사는 주부 노정희(여·62)씨는 ‘유기농’ 매니어다. 미국 LA에서 30년간 산 노씨는 유기농 채소를 주력 판매하는 로컬푸드 마켓을 자주 이용해왔다. 노씨는 “LA는 한인들이 많아 한인들이 좋아하는 채소들이 잘 팔린다”며 “특히 로컬푸드 전문점에서 파는 채소는 일반 유기농 채소보다 더 맛있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로컬푸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 딸 때문이다. 가장 신선한 채소만 골라 먹이고 싶었다. 노씨는 로컬푸드를 파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2년 전 한국으로 귀국한 노씨는 ‘유기농’ 표시가 된 채소들만 골라 사먹었다. 유기농 전문 판매점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미국에서 맛본 로컬푸드 만큼의 신선함은 느끼기 힘들었다. 결국 집 베란다에 상자텃밭을 깔고 깻잎·고추·쑥갓·상추·콩나물 등을 직접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전 강동구청 로컬푸드 전문점(싱싱드림)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전철로 40분 거리를 왕복하며 이곳에서 로컬푸드를 장본다. 인근 공동체 텃밭 주인들이 기부한 품목들이다.

 강동구청이 6월 개관한 ‘싱싱드림’은 서울 최초로 구청이 운영하는 로컬푸드 전문점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텃밭 12곳에서 직접 재배한 친환경농산물을 기부 받아 팔고 있다. 운송 거리가 5㎞ 이내에 불과하다. 1일 평균 250명이 방문하며 판매액은 90만원을 넘는다. 주고객은 인근주민들이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강남에서 차를 몰고 오는 손님도 있다. 강동구청 김종건 로컬푸드지원팀장은 “잔류농약검사를 통해 농약이 조금이라도 묻어있으면 판매 품목에서 제외한다”며 “신선하고 안전하면서도 저렴해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는 로컬푸드의 여세를 몰아 2020년까지 1가구 1텃밭을 조성한다는 목표다.
 
 유통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도 앞다퉈 로컬푸드 시스템을 도입, 확대하고 있다. 현지 직송 농산물 품목수를 늘리고 유통경로도 생산지→마트→소비자로 크게 줄여 푸드마일리지를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그린 밥상’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로컬푸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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