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죽다 살아났지만 … 후원 끊겨 막막한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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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레슬링연맹(FILA) 관계자들이 레슬링의 올림픽 복귀가 결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레슬링이 올림픽에 귀환했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린 한국 레슬링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처지다.

 대한레슬링협회는 9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야구-소프트볼, 스쿼시를 따돌리고 IOC 총회에서 레슬링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복귀한 바로 그날이다. 명색은 축하 기자회견이었지만 실제는 위기를 공론화하고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됐다. 이날 협회는 ‘지난달 22일 그동안 레슬링을 후원했던 삼성생명이 지원 중단을 최종 통보했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은 1982년부터 지난해까지 30여 년간 약 300억원을 지원했다. 삼성은 2018 평창올림픽 등을 고려해 겨울 종목에 투자와 지원을 늘릴 방침이다. 삼성은 협회에 “30년간 지원을 했으니 이젠 다른 기업을 찾는 게 좋겠다”고 결별을 고했다. 협회는 최근 삼성 측에 ‘이건희 회장님께 바랍니다. 삼성의 지원이 절실합니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제작해 네 차례나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김학열 대한레슬링협회 사무국장은 “삼성의 지원으로 한국 레슬링이 발전했다. 갑자기 스폰서를 잃게 돼 막막하다. 기업의 관심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회 운영에는 1년에 12억원 이상이 든다. 후원 기업을 찾는 건 쉬운 게 아니다. 한명우 협회 부회장은 “삼성이 다시 지원할 확률은 거의 없다. 당장 운영비가 없어 막막하다”고 했다.

 마음이 떠난 유소년 선수를 돌아오게 하는 것도 과제다. 지난 2월 올림픽 퇴출 소식에 꿈나무 일부가 운동을 포기했다. 한 부회장이 직접 유소년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학부모를 설득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여자 레슬링은 새 블루오션이지만 우리는 열매를 따기는커녕 싹을 틔우기도 힘들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개혁안을 통해 여자 자유형 체급을 4개에서 6개로 늘렸다. 반면 남자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체급을 각각 7개에서 6개로 줄였다. 하지만 한국 여자 레슬링은 저변이 얇다. 전국의 여자 선수는 208명, 중등부는 17명뿐이다. 등록 선수가 1만 명에 이르는 일본은 2012 런던 올림픽 여자 레슬링 4종목에서 금메달 3개를 휩쓸었다.

 최성열 대한레슬링협회장은 “여자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겠다. 훈련 여건이 좋은 카자흐스탄에 남녀 대표팀 훈련 캠프를 설치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실현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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