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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향방…후보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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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문제는 당 고문인 유진오 전 총재가 비록 조건부이긴 하지만 후보에 나설 뜻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유진오 고문은 17일 하오 12인 대표책위의 양일동·박병배·이충환·김재광·신도환씨 등이 그를 자택으로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 후보 문제로 당이 난국에 처하거나 유진산 당수를 비롯한 당의 의사로 요청이 있을 때는 후보를 수락하겠다.』고 말했다.
유씨의 출마의사는 매우 완곡하고 몇 개의 조건이 붙어있다. 유씨와 면담을 끝낸 뒤 그가 입회한 자리에서 양일동씨가 발표한 바로는 유씨가 『ⓛ후보가 될 때의 당론 조정 ②선거자금 조달 ③선거 중의 건강 우려에 대해 만전의 자신을 표명할 수 없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출마여부를 확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는 것.
신민당의 몇몇 간부들은 그동안 후보문제를 가지고 유씨와 여러 차례 예비접촉이 있었던 만큼 16일 만나 주고받은 대화는 상당히 구체적인 부분까지 터치됐다는 얘기들이다.
유 박사를 방문한 이들은 『현재의 당내 사정으로 봐서 만장일치의 추대는 장담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70∼80%의 지지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등으로 유씨의 후보수락을 종용했다.
유진오 박사의 대통령 후보 얘기는 어제오늘 갑작스레 나온 것이 아니고 그 연원은 신민당이 창당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민당은 당시 유씨를 대통령 후보감으로 당외에서 모셔왔던 것이고 지난해 9월부터 유 박사가 뇌혈전증으로 앓아 눕자 쑥 들어갔다가 지난 1월 동경에서 이루어진 유진오-류진산 회담에서 『대통령후보-유진오, 당수-류진산, 후보지명 전당대회-11월 개최』 합의에 따라 별다른 이론이 없었던 것.
그러나 동경 요양을 마치고 돌아온 유씨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자 당내에서는 연초부터 40대 후보론, 당외 인사 옹립 주장, 유진산 당수 추대론이 서로 엇갈려 왔었다.
이런 사정으로 후보문제에 관한 당론이 통일되지 않아 지난 3월로 예정됐던 후보지명대회는 9월로 연기되어 대통령 후보문제로 줄곧 진통을 겪어왔다.
체질적으로 40대를 싫어하는 당내 노장층들은 돌파구를 마련키 위해 한때 이범석씨와도 접촉했으나 별 진전을 못 봤다.
이러는 가운데 지난 여름 류진산 당수 자신이 단독으로 유진오 고문을 찾아가 후보에 나설 것을 종용했고, 지난 7월 말 유 당수의 방월에 앞서 양일동 정무회의 부의장이 여러 차례 유 박사를 방문하고 그의 건강상태와 후보문제에 대한 의사를 타진했다.
최근에는 양일동·박병배·이충환씨 등 당 중진들이 유씨를 번갈아 방문하고 후보수락을 설득했다.
유 박사는 최근 그를 방문한 이재학 당고문에게 출마문제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고, 15일 국회 부의장 취임인사차 방문한 정성태 의원에게도 후보를 수락할 뜻을 비쳤다는 것이다.
유씨의 출마의사 표명은 당내에 착잡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의 출마의사로 대통령 후보조정은 쉽게 결말날 수 있다고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유씨 아닌 다른 사람에게 후보를 넘기기 위한 연관 작업으로서 추대공작이 있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이런 해석은 완곡하고 조건이 붙은 출마 의사 때문에 나오게 된 것 같다.
실상 유씨의 출마의사에는 사전·사후의 조건이 붙어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경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사전조건이며, 건강·자금에 아직 자신이 없다는 것은 사후조건이다.
유씨는 17일의 면담에서 『현재의 내 입장이 5∼6개월 전에 이루어졌거나 앞으로 한두 달 후가 됐으면…』는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5∼6개월 전이면 출마종용을 거부했고, 한두 달 후면 출마를 명확히 수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여기서 시사되는 것은 지명대회의 연기 희망이다.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으러 10월초 도미하면 건강진단을 받고 돌아오겠다는 뜻도 말했다고 한다.
신민당의 이른바 40대 후보들은 유씨의 출마의사에 냉담하고 더구나 전당대회 연기에는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유진산 당수의 후보추대운동을 굽히지 않으려 한다.
유씨의 가족들은 그의 출마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으며 유씨 자신의 결심도 아직은 흔들리고 있는 만큼 그의 완곡한 의사표시로 신민당 후보의 방향이 잡혔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유씨가 유력한 후보의 후보로 부각된 것은 틀림없으며 이를 계기로 후보조정작업이 시간적으로나 대상면에서 변조된 것도 틀림없다.
양일동씨를 중심으로 한 전당대회 12인대책위는 앞으로 이범석·백낙준·허정·이인씨와 당내 노장층인 정일형·김홍일씨 등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의사를 타진하고 가능한 한 유진오씨가 범야적 후보란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줄 수 있도록 지지를 표명토록 설득할 방침이며 40대 후보후퇴, 지명대회 연기론도 공식으로 거론될 것 같다. 신민당은 이 과정에서 다시 진통을 겪게되는 것이다. <허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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