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작가>|8·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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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번 박 대통령의「8·15선언」은 새삼스럽게 어느 원점, 1945년 8월15일 그날을 나로 하여금 생생하게 떠오르게 해 주었다. 그간 스믈 다섯 번의 8·15를 겪었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때의 그 감격은 내 속에서 식어갔었고, 1년에 한번씩 어김없이 돌아오는 8·15를 그저 그렇게 늘 무관심하게 넘겼던 것이다.
옆집에서 태극기를 내 단 것을 보고 비로소『오늘이 8·15였구나』하고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는 정도였고, 그러니『어디에선가 간단한 기념행사가 있겠지. 그리고 이젠 슬슬 더위가 머리를 숙이기 시작하겠군』정도의 반응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8·15는 그렇지가 않았다. 연설 서두부터 약간「쇼킹」하였고 가벼운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동시에 우리의 어느 원점이 새삼스럽게「클로즈업」이 되었다. 지나치게 관념적인 대비이고 현실적으로는 하등의 의미가 없겠지만, 1945년 8·15와 1970년 8·15의 그 거리는 몇 십리인가, 혹은 몇 천리인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게되었다.
그리고 이 점은 실상 중요한 것이다. 당장 구체적으로 논의해볼 모서리는 없는 것이고, 경거망동이나 섣부른 주의주장은 경계해야 할 일이겠지만, 어느 근원을 새삼 각자가 확인하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왈가왈부 로써 일이 되고 안되고 하기에는, 우리의 여건이 너무도 어려운 처지에 있기는 하지만. 어느 근원의 당위를 새삼 확인하고 안하고 하는 차이는 중요한 것이다.
해방·직후의 그 혼란과 연이은 요인암살 등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격동기」내지「과도기」라는 낱말 몇 마디로 처리해 버릴 수만도 없을 것 같다. 내외 여건은 어떠하였든지, 그때만 해도 8·15라는 조국광복의 흥분과 감격이 나라안에 팽배해 있었고, 국가 민족의 운명에 대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최소한의 열정들은 각자 나름으로 갖고있었던 것이다. 그 열정의 폭발이 바로 혼란이요 격동이었다.
지금 와서 그 혼란과 그 격동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열정 자체를 저버리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요즘 거리를 휩쓰는 정신적 도덕적 무정부 상태·광기·폭발적인「바캉스·붐」·부박한 풍조 등은 바로 그 최소한의 열정을 완전히 탄신 함으로써 유래되는 것이 아닐까.
모두가 각자 나름으로 약게 사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도 약게 살려는 그 부피가 엷고 바탕이 옅어서 그 약게 사는 방향조차가 어느 답답한 질곡으로 줄을 지어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침착하게 어느 원점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오늘의 내 생활」 을 그 전체의 국면에서 부감 하면서 우리전체가 흘러온 흐름과의 연관 속에서 차분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구태여 열을 낼 까닭도 없으며 악악거릴 까닭도 없다. 유식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가 냉정하고 침착하게 한번쯤 돌아 볼만한 일인 것이다. 그 원천이 바로 1945년 8윌15일이 아닐까. 당신은 그 날을 어디에서 어떻게 겪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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