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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검사들 "특검 파견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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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5일 출범할 새 정부가 특별검사제의 상설화를 기정 사실화한 가운데 서울지검 평검사들이 최근 '특검에 검사 파견 거부'를 검찰 수뇌부에 건의했음이 밝혀져 파문이 일 전망이다.

이 요구는 지난 15일 평검사 회의에서 제기된 것으로, 겉으로는 '수사의 책임 소재 및 공과(功過)를 명확히 하자'는 게 취지다.

그러나 특검에 수사 영역을 침범당하게 된 데 따른 감정적 대응이며 집단.조직 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검 수사의 대상이 소위 '국민적 의혹 사건'이라는 점에서 국익을 도외시한 태도라는 비난도 있다.

◇"민간으로만 특검 구성"=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23일 "평검사회의에서 이런 의견이 나와 김각영(金珏泳)검찰총장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논의 끝에 정치적 공방이 예상되고 국민이 요구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수용하기로 했으나 특검 수사팀에 검사를 파견하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건의가 받아들여지면 앞으로 특검은 검사들 없이 변호사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주축이 되는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특검제가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것인 만큼 검사들이 참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검사는 "수사 지휘역할만 해온 특검과 특검보가 직접 수사를 하고, 특검보의 숫자를 늘리면 파견 검사의 일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검은 이를 포함한 전국 평검사들의 건의사항을 토대로 자체 개혁 방안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감정적 대응 측면"=법조계는 검사들이 배제될 경우 정.관계 인사들의 금품 수수 등 은밀한 범죄를 파헤치기가 힘들어져 특검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관기(金寬起)변호사는 "특검은 검찰이 직무유기를 한 성격이 강한 사안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검찰이 집단적으로 훼방을 놓는다면 국민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변호사는 "특검만 뜨고 파견 검사들은 뒷전에 밀리는 데서 오는 감정적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과 옷로비 특검, 2001년 이용호 특검 등 지금까지의 세 차례 특검은 모두 검찰 수사에 대한 재수사였다. 그 특검들에 검사가 참여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내부 인식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 갈등 소지=이용호 게이트 특검법안은 직무 수행에 필요한 경우 특검이 검찰총장에게 세명까지 검사 파견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었다. 검찰총장은 반드시 요청에 응해야 하며, 불응하면 특검이 징계 회부 요청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파견 검사로 선발된 검사가 특별한 사정을 이유로 거부할 경우 강제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소장 검사들의 파견 거부 움직임이 현실화할 경우 특검 구성 차질과 함께 검찰 내부의 항명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에는 부장검사 한명과 검사 두명이, 옷로비 및 조폐공사 파업 유도 특검에는 두명씩의 검사가 파견됐었다.

조강수.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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