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심하게 타 유전자 감식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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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대구 지하철 화재사고 사망자의 시신 상태가 국내 역대 대형 재난사고 가운데 가장 처참한 것으로 드러났다.1천도가 넘는 고열이 세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바람에 유전자(DNA) 추출이 어려울 정도로 시신 등이 심하게 훼손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종자 신원 확인을 위해 DNA 감식과 더불어 열쇠 등 유류품 조사를 함께 하고 있다.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신원 확인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전동차 안에 남아 있는 시신 감식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집단사망자관리단 이원태(李垣兌)단장은 23일 "국과수가 대형 재난 사고에 대한 사망자 감식 작업을 벌여온 1980년대 이래 이번 참사 피해자의 상태가 가장 처참하다"고 말했다.

89년 리비아 트리폴리 항공기 추락사고부터 지난해 김해 중국민항기 사고까지 대형 재난 사고 감식 작업에 참여해온 李단장은 "전동차 안에서 숨진 사람들의 시체는 불에 심하게 타 상당수가 골수나 치아에서 DNA를 추출할 수 없는 상태"라면서 "신원 확인은 물론이고 정확한 사망자 수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95년).씨랜드 화재(99년) 등의 감식 작업에 참여했던 국과수 중부분소 서중석(徐中錫)소장도 "대형 화재사고 피해자들은 소방관이 뿌린 물이 시신에 묻어 감식할 수 있는 부분이 남아 있는데 1080호 전동차에 물이 전혀 닿지 않아 시신이 화장한 것 같은 상태"라고 말했다.

徐소장은 "미국 9.11 테러 희생자들만큼이나 신원 확인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과수 李단장은 "한 구라고 생각했던 시신이 발굴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뼈가 섞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23일까지 시신 수습을 절반쯤 마친 1080호에서 70여명 분의 유골이 발견됐지만 동일 인물에 대해 팔.다리와 두개골을 각각 다른 사람의 것으로 중복 계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상태에서 최종 사망자 숫자를 1백40여명으로 단순 추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시신 수습 작업을 벌여온 관리단 측은 수거한 유류품 분석에 비중을 높이고 있다. 국과수 측은 지금까지 시신들 사이에서 열쇠.수첩.액세서리 등 유류품 수십점을 찾아내 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과수 관계자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의 열쇠가 10여개 발견됐으며 계모임 명단이 든 수첩 등 부분적으로 열기가 약했던 곳에서 의미있는 유류품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李단장은 "일단 시신 조각들을 가능한 한 모두 모은 뒤 크기.위치 등에 따라 재분류 작업을 하고 DNA 추출이 가능한 시신에 대해선 곧바로 분석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분석 작업이 마무리되려면 3~4개월은 걸릴 전망이다. 한편 화재사고대책본부 측이 사고 당일 사고 전동차 두 대를 월배차량기지로 견인해 시신 확인 작업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책본부는 18일 오후 5시30분 역사에 대한 구조물 균열 조사를 마친 뒤 오후 9시20분 전동차를 월배기지로 옮겼다. 19일 오전 11시30분 현장에 대한 감식이 끝나자 오후에는 군병력 2백명과 직원 1백여명을 동원해 잔재물을 수거하고 주변일대를 물 청소했다. 유류품 등을 정확하게 수거, 분류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공무원들의 사고 은폐 및 직무유기 등에 대한 고발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며 흥분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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