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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데스크」에 비친 그 실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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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에 살면서 예절을 들먹이는 것조차가 걸맞지 않을지 모른다. 예절이 살아있는가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오늘의 사회에 얼마나 될까. 상냥한 에티켓은 사회를 명랑하게 해주는 것. 오랜 세월 속에 은근한 맛이 스민 예절은 거친 현대의 삶을 한껏 흐뭇하게 해준다.
소설가 C씨의 집엔 현대 감각이 넘치면서도 가족성원간의 예의 범절은 깍듯하다. 가장이 가는 대로 온 가족이 따랐다. 아버지의 근엄 앞엔 아들딸들은 숨을 죽이는 판-. 그러면서도 아버지에게 할말은 숨김없이 서슴지 않고 들이댄다.

<아첨을 예절로 가장>
삼강오륜이 무엇 무엇어냐 물었을 때 『삼강은 압록강·대동강·한강 운운』했다는 어느 강단에서의 우스갯거리는 현실의 한 면목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예절은 반드시 종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의 도착된 예절의 값어치는 도리어 윗사람에게 살랑대기 위한 아첨을 예절로 가장하는 따위의 얄팍한 겉치레가 태반-. 횡적인 예절, 가령 직장에서의 선후배간의 예절, 사회인으로서의 에티켓, 대중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가름해주는 공중도덕 등이 현대에 있어서의 예절의 참모습인지도 모른다.
허례허식을 벗겨내기 위해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정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말이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의 예절은 버스를 탈 때, 전화를 걸때에 나타나야지 어떤 의식이나 번문욕례를 시세에 맞지 않게 강요해선 안 된다. 20세미만의 젊은이들은 정초 인사나 상가를 찾았을 때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만 교육받은 P씨 (29)는 상가에 문상 갔을 때 복잡한 절차에 어리둥절- 가정의례준칙이 하루빨리 생활화해야겠다고 말했다. 예부터 지녀온 미풍양속에 속하는 예절은 생활 속에 조화를 이루며 간직해야겠지만 하루아침에 걷어 찰 수도 없다. 차라리 현대엔 대중 속에서 질서를 찾는 예절의 르네상스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예절을 제도화하는 실정>
당국은 공중전화의 통화를 3분으로 제한하여 3분이 초과했을 때는 자동적으로 끊기게 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공중도덕이 아직 생활화되지 않은 우리에겐 제도화된 예절을 강요해야한다는 기현상을 빚기까지 했다. 뒤에 서있는 사람의 급한 사정은 살필 겨를 없이 공중전화통에 매달려 미주알 고주알을 늘어놓는 얌체를 다스리기 위한 고육지책-. 지난겨울에 서울에서 있었던 일-.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주부들이 한 개의 김칫독을 에워싸고 절도·폭행·무고 등 무려 5가지 죄목을 걸어 맞고소한 일이 데스크에 들어왔다. 장독대를 함께 쓰고 있던 주부들이 김칫독 한 개를 『네 것이다 내 것이다』고 우기던 끝에 주부 싸움은 법정으로 옮겨졌고 김칫독은 국립 과학 연구소의 감정까지 받았다.
가뭄이 한창이던 지난 5월, 공중 수도 앞에서 물을 받아내던 아낙네들의 물싸움은 마침내 살인극까지 빚어냈다. 새치기를 해서라도 물을 받아야겠다는 아귀다툼이 유죄라 할까.
작년 11월, 서울 시내 중구 모 병원장은 옆에 붙어있는 모 호텔에서 창 밖으로 내던진 담배꽁초 1개를 주워들고 파출소 문을 두들겼다. 옆집에 아무런 사전 양해 없이 솟아오른 고층 빌딩에 약이 오른 병원 주인이 시비를 벌인 끝에 주거 침입·무고·업무 방해 등으로 맞고소 사건을 일으켰다. 처마를 맞대고 사는 이웃끼리 한치의 골목 땅이라도 끌어들이려는 그릇된 생각으로 이웃 사촌을 금가게 하는 사례가 잦다.
심야 방송을 들을 때 『당신은 지금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해 놓지는 않았습니까』하는 「아나운스먼트」가 흘러나온다. 물론 조용히 잠든 이웃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교회의 새벽 종소리도 유난스러울 때가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합창 아닌 울음 합창으로 이웃 사람들의 상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시끄럽게 들려오는 읍내 공회당의 확성기 소리-청중이 있어야만 하는 모임이 아니면 오랜만에 열리는 영화 상영이나 극단의 공연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거리의 레코드 상점이 스피커를 아예 보도에 내어놓고 음악을 틀어놓는 것도 생각해 볼일이다.

<공공 시설을 마구 파손>
우리 나라의 공중 변소가 특히 지저분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공중 도덕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왔다. 자기 소유물이 귀중함은 잘 알면서 공유물이나 공공시설의 중요성은 인식되지 못한다.
남산 공원의 꽃시계가 무참히 짓밟히기도 하고 남산 공원 어린이 놀이터의 그네·의자·공공수도 등 시설은 거의 모두가 망가진 상태에 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화장실에 놓아둔 시계가 한 주일이 지나도록 그대로 놓여 있었는데 우리의 현실은 대문에 달아둔 초인종을 떼어가기 일쑤고 심지어는 문패마저 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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