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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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종 황제는 이조 (한양조) 5백년의 역사가 장차 그 종말을 고하려고 할 때 사직의 안태와 국가의 장래를 며칠만 있으면 일본으로 끌려갈 나 어린 아들 영친왕에게 촉망하였지만 당년 12살밖에 되지 않은 영친왕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부담이었다. 보통 서민의 집 아이들 같으면 집안에서 제기를 차든지 밖에 나가 연이나 날릴 나이에 어찌 그러한 중대한 문제를 잘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밀 밖에 서서 고종 황제가 아드님에게 하시는 말씀을 엿듣고 있던 상궁들은 그 눈물겨운 광경에 일제히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었다.
그러면 이등박문은 어찌하여 한국 침략에 그토록 심혈을 경주하게 되었던가?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해방 후 필자가 영친왕께 설명해드린 내용을 대략 여기에 써보려고 한다. 『일로 전쟁은 왜 일어났던가? 그것은 제정 러시아의 동방 정책을 일본이 저지하려고 한 때문인데 문제의 중심은 한국에 있었다. 제정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두개의 외교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한국에 부속항 (얼지 않는 항구) 을 두는 것이오, 또 하나는 만주에 진출하여 서백리아와 연결하는 철도를 놓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동방 정책은 착착 성공하여 점차 한국을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일청 전쟁의 경우와 같이 한국의 타국에 의한 제압은 일본의 안전 보장에 해가된다고 생각한 당시 일본 정치가와 군인들은 어찌하면 러시아 진출을 막을까 하여 노심초사하였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교섭해서 타협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영국과 제휴하여 러시아를 쳐부수든지의 소위 「양자택일」을 하지 아니치 못하게 되었다.
그후 일로 전쟁을 하게된 경과에 대해서는 1904년2윌8일 밤「고무라」(소촌수태낭) 일본외무 대신이 동경에 있는 중요한 각 신문사 사장과 잡지사 주간들에게 발표한 다음과 같은 담화문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유지하고 그와 함께 조선 반도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한 이익을 옹호하는 것은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행동이든 간에 한국의 지위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일본 정부로서 이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러시아는 공약을 무시하고 의연히 만주를 점령하고 나아가서는 감히 한국 안에서 침략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만주가 러시아의 병탄하는 바가 된다면 한국의 독립은 위험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은 속히 러시아와 교섭할 필요를 느끼고 다음과 같은 조건을 러시아 정부에 제의하였다.
①청한 양국의 독립급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을 상호 약속할 것
②노국은 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우월한 이익을 승인하고 일본은 만주에 있어서의 철도경영에 대하여 노국의 특수한 이익을 승인할 것
③한국에 있어서의 개혁급 선정을 위한 조언과 조력을 주는 것은 일본의 전권에 속하는 것임을 노국이 승인할 것 등인데 러시아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질질 시일을 끌다가 결국 10월3일에야 회답을 했는데 그 중에는 북위 35도선 이북의 한국 영역을 중립 지대로 하자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회답의 내용은 대체로 일본측의 제안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일제는 1904년2월10일 러시아에 대해서 선전을 포고하였는데 그보다 이틀전인 2월8일에는 인천 앞 바다에서 벌써 두 나라 함대 사이에 해전이 벌어졌었다.
이등박문은 전쟁이 개시되자 한국을 단단히 일본측에 붙들어 두게 하기 위하여 한국 왕 위문의 특파 대사가 되어 1905년3월에 한국을 방문, 고종 황제를 배알하고 여러 가지 말씀을 여쭌 후 약 1주일만에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한국은 그후 곧 러시아에 대해서 국교 단절을 선언하였다.
일로 전쟁은 봉천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만주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져 일로 양군 사이에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어 언제 끝이 날지 모르다가 1906년5월27일 「도오고」(동경평팔낭) 대장이 지휘하는 일본 해군이 대마 해협에서 러시아 함대를 격멸 함으로써 겨우 종결되었다.
그리하여 미국 대통령 「디어도·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중개로 미국 「포츠머드」군항에서 강화 회의가 열리고 그 결과로 한국은 필경 일본의 보호국이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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