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5)엽기와 미신의 만종사회|김찬삼여행기(호령 동뉴기니아서 제3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상최대의 암흑시대라할 이 20세기에서도 더렵혀지지않은 처녀성을 고이 간직한채 고고하게 창세기때의 모습으로 도사리고 있는 뉴기니아섬의 원시림! 그리고 이 섬은 수많은 산호초로 물든 찬란한 코발트·블루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꿈나라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이 섬은 위도상으로는 완전한 열대에 속하지만 몇천m의 높은 산맥이 동서로 뻗쳐있어서 열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수직적인 기후를 이루고있으며 따라서 동식물의 품종도 수없이 많다. 뉴기니아섬의 정글을 깊숙이 탐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한다. 길이 없고 산이 험해서 뿐만 아니라 식인종이 있으며 더구나 말라리아병을 옮기는 모기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탐험할만한 이렇다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으니 산에 아주 깊숙이 들어갈 수는 없으나 지금 머무르고 있는 항구도시인 라에이에서 그리멀지 않은 산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여기서 사귄 어떤 지식인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게 식인종이 사는 마을이 있는데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그는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들의 좋은 밥이되려고 그러시오. 낮선인종이 나타났다고 더욱 반길텐데...,"하며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식인종은 매우 깊은 산속이나 외딴곳엔 아직 있을지 몰라도 이 라에이항 근처에선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하도 애원하니까 그는 "식인종이 살던 마을이나 한번 구경시켜드리리다."하며 함께 갈 채비를 차렸다.
산기슭의 어떤 마을에이르니 오막살이 집에는 질겁을 하게도 사람의 두개골이 매달려 있지 않은가. 알고보니 이곳에선 수십년전만해도 식인종이 많이 살았는데 자기들의 적이 되는 종족의 목을 잘라 가지고는 그 머리를 썩지않게 하기위하여 연기에 그을려서 이른바 훈제로 만들어 집이나 문밖에 고이 간직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집에 매단 두개골은 그전의 것인가보다. 뉴기니아의 번족들은 적의 두개골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훌륭하다고 보기때문에 어떤 추장은 놀랍게도 1백여개의 두개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사람의 두개골을 최상의 보물처럼 보관하는 것은 파푸아족인데 이들은 적의 목을 자르면 눈알을 빼내고 그 자리에 진주조개껍데기로 눈알을 만들어 넣으며, 또 코에는 나무 열매나 개의 이빨따위로 길게 이어서 마치 코끼리 코처럼 만든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않고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때 보여주는 최고의 가보라는 것이었다.
이 섬엔 엽기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미신이 많다. 어떤 곳에서는 남여가 고기잡이나 사냥을 하러갈때에는 여자의 분비액을 화살촉이나 창끝에 바르는데 이렇게 하면 많이 잡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때에도 싸움터에 나가는 무사들이 창끝에 자기아내의 분비액을 바른다고한다. 이것은 곧 부부의 화합이 좋은 성과를 가두는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생의 궁극적행복이 부부애에서 우러난다는 철리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푸아족의 부부도나 정조관념은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여의면 온몸에 진흙을 발라서 마치 석고로 만든 조각처럼 되어 1년이란 오랫동안을 홀로 산다고한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죽으면 강가에 가서 얼굴에 온통 흙칠을 하고 언제까지나 슬픔속에 잠겨 l년동안 상을 치르노라고 낮엔 아예 남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눈물겨운 부부애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부도덕적인 풍습이 없지도 않다. 사내아이가 아버지를 닮거나 계집아이가 어머니를 닮으면 자식이 어머니의 수명을 줄인다고 믿고 있어서 어릴때 자식을 죽여버린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아들은 어머니와 같은 여성을 그리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또 딸은 아버지와 같은 남성을 동경한다는 엘렉트라·콤플렉스를 방불케하는 것이었다.
고대와 현대의 구획이없을만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이 원주민들의 사회. 이들은 아직도 사람고기를 먹고 사람 목을 자르는 풍습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무지할 뿐 결코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이들에겐 맹자의 성선설이랄까 칸트의 선험적인 도덕률 같은 것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생지옥과도 같은 세계에서는 도리어 이런 무지가 선일수도 있지 않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