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러쉬-인술 외면 종합 병원|예사로 치료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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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환자에 비해 시설이 크게 모자라는 대도시의 종합 병원 들이 병상 증설 등 시설 확장은 외면한 채 운영면에서 관료화 경향마저 보여 환자들에게 불편을 끼쳐주고 있다. 여름철을 맞아 환자 러쉬를 맞은 여러 종합 병원에서는 요즘 급한 환자들이 진찰을 받으려할 때 하루 2 ,3시간씩 차례를 기다려야하며 그나마 병상수가 모자라 입원을 하려면 며칠씩 아픔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병원 당국은 2, 3분만 늦어도 진료를 예사로 거부하는 반면 오히려 담당 의사들은 진찰 시간을 지키지 않는 등 인술과는 너무 거리가 먼 실태를 드러내주고 있다. 이 같은 종합 병원 러쉬는 연쇄적으로 응급 환자의 수용 태세에까지 영향을 미쳐 위급 환자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사례마저 빚고 있다.
서울 시내 종합 병원의 경우 각 병원마다 하루 평균 5백명에서 최고 1천5백명까지의 외래환자가 찾아오는데 병원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진찰권 판매 시간을 3∼4시간으로 제한, 이 시간 안에 진찰권을 먼저 사려고 아우성, 좁은 대합실은 혼잡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대 의대 부속 병원의 경우 진찰권 접수 시간이 상오 9시∼11시30분까지와 하오 12시30분∼1시30분까지로 모두 3시간3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 짧은 시간에 평균 5백명의 환자에다 가족까지 1천5백∼2천명의 시민이 4평 남짓한 창구 앞에서 수속을 치르는 불편을 겪고있다.
세브란스 병원도 비슷한 실정으로 환자·가족 등 1천5백명이 비좁은 창구에 매달려 1시간∼2시간 동안 고통을 참으며 시달려야 한다.
이 짧은 접수 시간에 1분만 늦어도 그날은 허탕, 이튿날 다시 병원을 찾아야하는 곤란을 당한다.
눈병을 앓는 윤경홍양(28·서울 마포구 동교동 87) 은 28일 하오 회사를 조퇴하고 서울대 부속 병원에 달려갔으나 꼭 5분이 늦은 1시35분이어서 진찰권을 사지 못했으며 박남팔씨(42·경기도 시흥군)도 버스로 오느라고 시간이 걸려 1시40분에 도착, 10분이 늦어 헛걸음을 하고 돌아갔다.
서울대 의대 부속 병원은 상오 9시부터 진료를 시작하기로 규정돼 있으나 실제 10시30분이 돼야 의사들이 나오며 세브란스, 적십자 병원, 중앙 의료원 등도 비슷한 실정.
특진의 경우는 더욱 심해 다리가 아프다는 김모씨(46·서대문구 만리동) 는 지난 25일 중앙 의료원 허곤 신경 욋과 과장 특진을 신청, 이틀이 지난 27일 하오 3시에야 겨우 진찰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같이 환자들이 많이 몰리는 통에 재래 환자도 푸대접을 받는 등 부작용도 많아 지난 27일 D회사 직원 김모씨(34)는 3년 전에 치료를 받은 적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구 진찰권을 내밀었으나 30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바쁜 김에 새로 진찰권을 사버렸다고 불평했다.
또 같은 날 서울대 의대 부속 병원 산부인과 321호실에 입원, 아기를 낳은 오명자씨(30·성북구 정릉동 604의57) 는 욋과 진찰을 받으려 했으나 간호원들이 새로 진찰권을 사는 게 편하다는 말을 듣고 안내도 될 1백원을 내고 새 진찰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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