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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의 설상가상 국내전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국은 정신적으로, 아마도 체제적으로도 파열의 판국에 직면했다. 지난 1세기동안 처음으로 우리는 미국의 장래가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닉슨 대통령의 캄보디아 개입으로 깊은 국론 분열 속에 던져진 오늘의 미국을 나타낸 미국인의 말이다. 캄보디아에 지상군을 진격시켜 월남 밖으로 확전 길을 치닫는 닉슨 대통령의 조치는 분열로 인한 위기의식과 좌절감을 미국에 젖어들게 했다.
끝없는 외우는 이처럼 깊은 내환을 불러일으켜 닉슨 행정부는 분열, 대립, 불신이 도전하는 국내여론전선에서 또 다른 고전을 치러야 하는, 집권이후 최대의 궁지에 빠졌다. 캄보디아 개입을 거의 독자적으로 결정함으로써 닉슨 대통령은 『한데 뭉쳐 함께 전진하자』는 자신의 구호를 버리고 내각, 의회, 대학생을 중심한 젊은 세대로부터 반발을 받아 스스로를 가장 고독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지난 10여년 간 월남에 8백20억 달러의 돈을 쏟아 넣고 4만1천6백여명의 젊은이들을 희생하면서 사이공 거리를 워싱턴의 거리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기현상을 회의하며 다시 월남전이 캄보디아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반전파 학생들을 건달이라고 규정지었고 켄트 주립대학에서는 4명의 남녀학생이 피살되는 유혈사태를 빚었다.
이 사태로 4백40여 대학이 닉슨 정책의 반대에 참가했으며 대학총장 등 교수들도 가세했다. 캄보디아 개입을 반대하는 상원의원들은 캄보디아 전비를 삭제해버림으로써 닉슨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를 무규한 그의 독주를 제동하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상원의 닉슨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견제가 전비 삭제 같은 과격한 조치를 취하여 헌법위기를 유발하지 않겠다고 하원이 천명하고 있어 실제가동은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전쟁 및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의회의 절대적인 지지 없이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닉슨대통령의 지도력은 벽에 부닥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리더쉽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캄보디아 진격을 결정함에 있어 닉슨 대통령은 행정부 자체 안의 분열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월남으로부터 철수하겠다는 공약을 하고도 대 캄보디아 결단은 점차적인 종전을 기대한 국민들에 대한 무신경과 독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은 국민과 의회로부터 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주요각료 및 고문들로부터도 고립되었다. 월터·히켈 내무장관이 닉슨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역사를 상기시킨 것은 행정부자체가 얼마나 불화 했었나를 웅변해주었다.
히켈 장관은 『젊은 세대들은 정부와의 대화를 잃고있다. 미국의 탄생이 젊은이들의 항의투쟁에 의한 결과이며 곧 이것이 역사였다』고 지적하고 『젊은이들의 불평은 경청돼야한다』고 직언 했다. 그는 대통령과 각료들 사이의 원활한 대화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일들」을 해결해갈 수 있는 더 깊은 통찰력을 갖자고 충언함으로써 「올드·닉슨」의 보수성을 힐난했다.
프린스턴 대학은 오는 가을, 학기보다 일찍 개강하고 방학을 줄여서라도 11월 선거전에 2주일의 휴교기간을 얻어 학생들을 선거운동에 풀어놓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3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생들 대부분이 집총을 거부, 이른바 『옥스퍼드 서약』을 했을 때 히틀러는 영국이 내부적으로 완전히 썩어 파멸될 줄 믿었고 세계전쟁을 일으킬 충동을 더 받았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생들은 물로 전쟁에 나가 영국을 지켰다.
공산측은 미국의 국론분열을 과대평가 하여 히틀러처럼 오산을 범할는지도 모른다는데 닉슨의 내환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나 닉슨도 『믿는 곳』은 있다. 그가 말하는 『말없는 다수』다. 최근「뉴스위크」지가 「갤럽」을 통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사람들은 2대1의 비율로 닉슨을 지지하고 캄보디아 개입에 대해서는 50%가 지지, 39%가 반대한다는 통계가 나왔다.<조성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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