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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정치인의 멋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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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도 누구 못지않게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쓴다.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는 정치인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주요 정치인들의 차림새와 거기서 드러나는 분위기를 살펴봤다.

여야 정치권에서 옷을 가장 잘입는 사람은 단연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체형의 단점을 고급 양복으로 커버한다. 그가 입는 옷은 주로 이탈리아제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냐, 베르사체 등이다. 간혹 그보다 약간 싼 독일제 보스를 입기도 한다.

한벌에 1백50만원에서 3백만원선이다. 그러나 제 돈을 주고 사입지는 않는다는 게 본인의 주장이다. 미국에 있는 친지가 세일때 일괄 구입해 때마다 보내준다고 한다. 그래서 옷을 몸에 맞추기보단 다이어트 등을 통해 몸을 옷에 맞춘다.

그는 아마도 정치권에서 단추 3개 짜리 양복을 가장 먼저 입은 사람일 것이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단추 4개 짜리를 입고 나타났다가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

옷에 관한 한 그는 거의 일류 연예인 수준의 감각을 갖고 있다. 특히 넥타이 감각이 뛰어나다. 에르메스,페라가모,아르마니 넥타이를 주로 매는데 색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 원색보다는 중간색의, 펄이 들어가 반짝이는 넥타이를 선호한다.

야당 정치인 중에서 가장 옷을 잘입는 사람은 영화배우 출신인 신영균 의원이다. 키는 작지만 얼굴이 작아 폼이 난다. 몸관리도 비교적 잘해 7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입는 옷은 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그러나 그저 고급 양복을 입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독특한 색감의 카키색 등 웬만한 매장에선 찾기 힘든 색의 양복을 입는다. 넥타이는 비교적 수수하게 맨다. 권노갑씨도 이탈리아제 양복을 입는다. 이탈리아제 양복의 특징이 윗옷 길이가 길다는 점인데 그가 입는 옷은 유난히 길다. 그래서 코트를 입었는지 양복을 입었는지 구분이 안갈 때도 있다.

국산 기성복을 입는 대표적 인물은 노무현 당선자다. 파크랜드나 에스에스패션의 중저가 양복을 입는다. 그는 자신이 무슨 양복을 입는지를 모르고 입는다. 그저 가리고 걸치는 게 옷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대선 이후 새 옷을 입고 다니는데 옷이 몸에 비해 조금 큰 것으로 봐 기성복인 것 같다. 그는 넥타이도 주변 사람들이 주는 아무 넥타이나 맨곤 했는데 당선 이후엔 전문 코디가 붙어서인지 밝은 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다.

정치인들은 보통 맞춤 양복을 입는다. 제일 흔하게 입는 양복이 J라사 양복이다. 10명중 3, 4명은 그집 옷이다. 서울 태평로에 있는 J라사는 고급 맞춤 양복점이다. 옷감의 질에 따라 값이 다르지만 대략 1백50만원에서 2백만원 안팎의 양복을 만든다.

정치인들이 그렇다고 일부러 J라사를 찾아가 옷을 맞추는 건 아니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양복표가 그 가게 것이다. 정치권에서 손쉽게 주고 받는 선물이 양복표다. 그래서 3, 4년 지난 양복표까지 계속 유통된다.

양복표를 들고 찾아갔더니 양복점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그래서 주고도 욕먹는 수가 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초창기에 동교동계 한 인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서울 강남의 한 양복점 양복표를 돌렸다.

그런데 찾아가 보니 양복점 주인이 바뀐 상태였다. 몇사람은 전 주인을 찾아가 끈질기게 양복을 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 양복을 찾아입는 데 길게는 4개월이 걸린 사람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양복점 양복을 입는다. 유별나게 멋을 추구하는 YS의 단골 양복점은 서울 소공동의 체스터필드다. 거의 평생 그집 옷만 입었다. 때마다 옷집 주인이 상도동 YS자택을 방문, 사이즈를 재간다.

DJ의 경우 별로 유명하지 않은 양복점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DJ는 YS와 달리 멋에 관심이 많지않다. 그저 편하면 최고다. 밝은 색 넥타이를 자주 매는 것은 박지원 실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YS는 지금도 수백개의 넥타이를 갖고 있다. 젊어 보이려고 주로 붉은 색 넥타이를 매는데 매는 방법이 독특해 유명하다. 넥타이 한가운데에 강한 세로 주름을 준다. 그 주름은 YS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래서 DJ의 동교동 사람들은 일부러 뭉툭하게 매고 다녔다.

DJ는 구두에서도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가 신는 신발은 보통의 구두가 아니다. 사스(SAS)라는 이름의 외제 구두인데 앞이 뭉툭하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굉장히 발이 편한 구두로 유명하다. 서서 일하는 간호사나 백화점 직원들이 많이 신는 구두다.

DJ는 구두를 자기 사이즈보다 약 10mm 정도 더 큰 것을 신는다. 그러곤 거의 질질 끌고 다닌다. 아마도 걸음걸이가 불편해서 그런 것 같다.

멋에 관심이 없기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똑같다. 도가 지나쳐 일부러 멋이 안나게 하고 다닌다. 옷은 기성복이나 양복점 옷을 가리지 않고 입는데 바지 주름을 잡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날카롭게 보일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 작게 보이는 키는 키높이 구두로 조절한다. 멋에 대한 감각이 부족해서 넥타이도 아무거나 맨다.

정몽준 의원도 별로 옷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베스트 드레서 소리를 들었다. 싼 값에 멋을 낸 경우다. 그는 좀처럼 외제 옷을 안입는다.

대신 어울리는 옷이라 느껴지면 한 양복만 집중적으로 입는다. 워낙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진 체격이라 사실 무얼 입어도 잘 어울린다. 간혹 양복 가슴 주머니에 하얀 손수건을 꽂는 것으로 포인트를 준다.

의외로 여자 정치인 중엔 이렇다 할 베스트 드레서가 없다. 눈에 띄는 옷을 입는 여성 정치인을 꼽는다면 박근혜 의원 정도다. 그러나 박의원은 아무리 물어봐도 어디서 옷을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외제 명품 옷을 입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어느 국내 디자이너의 옷인지를 밝히지 않는다. 입는 옷의 패턴도 거의 같다. 무릎 아래 약 20cm까지 내려오는 치마에 단정한 윗옷이 그가 입는 옷이다.

정치를 하기 전엔 미니 스커트와 청바지도 입었다고 하지만 봤다는 사람은 없다. 박의원은 디자인보다는 색깔로 멋을 부린다. 짙은 색보다는 화사한 색상의 옷을 번갈아 입는다.

정치부.생활레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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