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족 출신 원측 스님 명저 … 깨달음, 인간심리로 설명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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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백진순

팔만대장경 한글 번역은 진작에 끝났다. 동국대 부설 동국역경원이 번역 시작 37년 만인 2001년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했다. 하지만 오역이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동국대의 ‘한국불교전서’ 한글 번역 사업은 그래서 시작됐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까지 우리 저자가 쓴 불교 서적만이라도 충실하게 옮기자 취지다. 323편, 698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2020년까지 끝낼 계획이다. 지금까지 3차에 걸쳐 21권이 번역됐다.

 이 사업의 4차분 여덟 권이 최근 출간됐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백진순(49) 조교수가 번역한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세 권이 눈에 띈다. 방대하고 어렵기로 소문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인 그는 “근원적인 곳으로 사람을 몰고 가는 매력” 때문에 불교 공부에 뛰어들었다. “처음 5년은 쉬엄쉬엄 하긴 했지만 전체 8권으로 출간하는 『해심밀경소』 번역에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나머지 다섯 권은 내년에 나온다.

 - 『해심밀경소』는 어떤 책인가.

 “불교의 심리학인 유식학(唯識學) 분야의 대표적인 저서다. 유식학의 기본경전인 『해심밀경』에 7세기 신라 왕족 출신 승려인 원측(圓測·613∼696)이 주석을 단 것이다. 인간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 책이다. 번쇄하다는 말이 부족할 만큼 복잡하고 세밀하다.”

 - 원측은 어떤 인물이었나.

 “소설 『서유기』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중국 당나라 승려 현장(602?~664)의 핵심 제자다. 측천무후(624~705)가 살아 있는 부처님처럼 대접했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 중국 학자들은 그가 신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깎아 내렸다. ”

 - 일반인에게는 내용이 어려워 보인다.

 “번역하다 지칠 때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곤 했다. 스토리 라인에서 탄탄한 불교적 바탕이 느껴져 깜짝 놀란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다. 『해심밀경소』도 그런 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면밀히 읽으면 환상적인 장면이 많다. 가령 부처님이 경(經)의 내용을 선정(禪定) 상태에서 설한다. 일종의 환상 상태다. 거기에 제자들이 나온다. 제자의 입장에서는 남의 꿈, 환상 속으로 들어간 거다. 콘텐트 개발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장면 아닌가.”

 - 번역의 의미를 꼽는다면.

 “한국불교가 1700년을 이어 내려온 건 이런 책이 있기 때문이다. 호락호락한 불교가 아니라는 증거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구윤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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