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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세액공제 전환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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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홍기용
인천대 교수
한국납세자연합회장

2013년 세제개편안에서 근로소득자의 필요경비(의료비·교육비·보험료·기부금 등)를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놓고 정치권 등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 하고, 여당과 정부는 “조세 형평이 강조됐다”고 한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고 정부는 하루 만에 총급여 5500만원 이상인 사람에게만 세 부담이 늘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의 취지와 문제점에 대해 납세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고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는 세제개편안 초안에서 “3450만원 이상의 소득 상위 28%가 세 부담이 늘고, 나머지 72%는 감소한다”고 했고 수정안에선 “5500만원 이상의 상위 13.2%만 세 부담이 증가한다”고 했다. 이는 통계적 착시현상이다. 연간 근로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의료비·교육비·보험료·기부금·연금저축 등 필요경비를 지출하지 않았던 납세자는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더 내야 할 세금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 반대로 노후·사고에 대비하거나(연금저축 400만원 공제, 보장성 보험료 100만원 공제), 큰 치료를 받은 가족이 있거나(700만원 공제), 대학생 2명의 자녀(1800만원 공제)나 유치원생 2명의 자녀를 둔(600만원 공제) 근로소득자들만 세 부담이 증가하게 됐다. 따라서 평균치로 계산해 상위 28% 이상(수정안에서 13.2%)의 근로자는 모두 세 부담이 증가한다고 한 건 오류다. 초안에서 72%는 세 부담이 감소한다는 것도 과장이다. 이에 해당하는 1548만 명 중 557만 명이 원래 세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세제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의료비·교육비·보험료·기부금 등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경비이므로 이를 공제한 나머지에 세율을 곱해 소득세를 계산하는 게 일반적인 조세원칙이다. 지금도 미국·일본·독일·싱가포르·대만 등 많은 국가에서 이렇게 한다. 한국에서도 수십 년간 유지했던 이 제도를 이번에 왜 세액공제로 전환했는지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고소득 근로자의 세 부담이 는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즉, 의료비·교육비·보험료·기부금·연금저축 등 필요경비를 불가피하게 지출하는 사람만 세금이 늘 뿐 이를 지출하지 않는 근로자들은 세금도 증가하지 않는다. 이는 필요경비를 소득공제로 인정하는 조세원칙에도 어긋나고 국제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다. 소득이 같아도 이러한 필요경비를 지출해야 하는 근로자들은 세 부담 능력이 낮다. 그런데도 그렇지 않은 근로자와 같은 세율로 과세하면 오히려 세 부담을 높여 조세 형평을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기본 골간을 유지한 상태에선 세액 증가층 기준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 등 아무리 높여도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도 감안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을 과감히 재고하고 실제로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주기 바란다. 근로자들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이 일부 늘어나는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조세 형평과 관련해 자신들이 다른 소득자에 비해 차별받는다고 생각해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정부가 금융소득자, 부동산임대업자, 고소득 자영업자, 대재산가 등과 조세 형평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들에 대한 지하경제 양성화에 더욱 매진하기를 기대한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 한국납세자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