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드라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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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셍텍쥐페리(불작가)작 『야간비행』은 감동의 명작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20년대 남미에 우편항공로가 개척될 때이다. 칠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는 사이엔 안데스산맥이 가로놓여 있다. 이 산맥은 로키산맥과 이어지는 천험지대이다.
한밤중에 여기를 넘던 비행기가 폭풍우를 만난다. 비행기는 고도를 잃고 비틀거린다. 항로가 있을리 없다. 암흑의 폭우 속에서 그저 방황할 뿐이다. 비행기의 연료는 불과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나가는 것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겠읍니까?』
작가는 불현듯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다. 또다시 그 질문은 반복된다.
『어떠한 냉혹, 혹은 어떤 괴상한 사람의 이름으로, 고대 군중들의 지도자는 산 위에 신전을 쌓아올려 그들의 영원을 만들었을까?』
생명에 대한 극한의식은 이처럼 인간조건에 직면한 회의를 자아내게 한다.
조종사는 드디어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가 움켜쥔 핸들에서, 함께 타고있는 동료와 자기의 심장이 맹렬히 뛰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마치 그 심장을 움켜쥐고 있기라도 한 듯이-.
셍텍쥐페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용기와 의지를 주는 것은 책임관념이라고.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와 맞서서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은 책임감, 그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에 아폴로13호의 우주인들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들의 좌절은 과학의 좌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그리고 인간의 위대성이 좌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우주인들은 담담한 편인 것 같다. 그렇게 체념과 절망감 속에서, 아니면 초조 속에서 안절부절하지 않는다. 『여기는 3등 선실같다』는 조크도 한다.
우주인의 훈련 속엔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62%나 포함된다고 한다. 암흑 속에 그냥 내버려두는, 고독감에의 극복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와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조건의 대결을 보는 느낌이다. 인간조건이란 우주에의 도전에서 인간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얼마나 열어 놓았나하는 현대과학의 한 단층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야간비행』의 파비엥(조종사)은 그 조난 속에서 『고요한 해변의 은모래』를 연상한다. 차라리 그것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는 최후의 환상인지도 모른다. 실로 우리는 이 순간 우주도전보다 더 리얼한 인간의 엄숙한 드라머를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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