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자금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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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근자 시중자금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어, 어음 부도율이 현저히 높아지고 있으며, 재벌급 회사에서도 상당한 부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수출산업에 피해가 크게 미치고 있다든지, 또는 현재의 자금난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있어 현재의 긴축정책이 그 도를 지나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연초 이래의 각종 통계는 얼른 긴축을 풀어주기도 어려운 상황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초이래 통화량은 지난 2월 말 까지 불과 두 달 사이에 2백 85억 원이나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며, 금융기관 대출도 같은 기간에 2백 86억 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물가지수도 전국 도매기준으로 같은 기간 중 3·2%나 오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건축자재 가격 등 기본 물자의 가격 상승률은 훨씬 높은 것이며, 그 위에 유류 가격이 인상되었고 또 「택시」요금·석탄가격 등 인상이 불가피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일련의 물가동향을 감안할 때 업계의 요구대로 긴축을 풀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긴축이 계속될 때 전면적인 도산 가능성이 있느냐의 여부가 문제를 해결하는「키·포인트」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도산이 일반화 할 우려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지금의 긴축정책은 『쥐잡으려다 독 깨는 격』이 될 가능성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긴축을 계속함으로써 안정기조를 차제에 완전히 구축한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실태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냉정, 엄밀하게 판단하는 일이라 할 것이며, 그것 없이는 합리적으로 긴축문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오늘의 자금난이 반드시 긴축정책의 소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업계는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자기자본을 준비하지도 않고 공장을 건설하려는 타성을 비롯해서 자기자금뿐만 아니라 차입금까지 털어 넣어서 부동산 투자이득을 노린 사실에 대해서 업계는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그런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도 긴축정책은 당분간 좀 더 지속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업계가 금융기관 예금이자에 대한 면세혜택을 악용하고 있는 점도 차제에 시정해야 할 것이다. 자기자금은 정기예금을 하는 대신, 은행융자를 받아 세무상으로 이중의 이득을 노리도록 허용한 그 동안의 제도적인 모순 때문에 오늘날 금융기관의 정기예금은 개인예금보다도 기업예금으로 구성되는 이상상태 하에 있는 것이다. 기업의 자기자본 구성비가 현저히 낮은 상태에서 정기예금을 하고 다시 대출을 받아 조세상의 탈출구로 이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끝으로 금융기관의 정기예금의 대부분이 기업체 예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긴축정책의 모순을 크게 하고 있음도 당국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정기예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도를 내고 대불을 일으킨다는 것은 결국 대출증가를 허용하지 않으면 정기예금의 해약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출 증가를 허용하든 아니하든 통화량 증가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에서 긴축정책을 원만히 끌고 나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된다면 긴축문제가 제기한 일련의 문제점들은 당국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업계와 당국은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 경제를 위하는 길인가를 깊이 성찰하고 이런 각도에서 서로 협조하는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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