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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어떻게 여가를 생활하나|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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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본래 그림을 잘 그렸으나 여덕은 필한(글재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그 방면에서 손을 끊었다.』이조중엽 선비가정의 한 여성인 「김씨」(강희맹의 10대손부)에 대한 기록이다. 그의 작품은 「포도첩」한폭만이 오늘날에 전한다.
바깥활동이란 상상도 못했던 우리의 옛 여인들은 갇힌 생활의 외로움을 붓끝에 담거나 혹은 인두로 지져 그리는 낙화로 인내와 정서를 가꾸어 왔다. 그것 조차도 「여덕」을 해칠세라 감추면서 그려왔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대할 수 있는 규방의 화폭들은 극히 적다. 그러나 신사임당(1504∼1551)같은이는 이 두터운 규방의 벽을 뚫고 당대의 재상 우암 송시열도 감탄할 정도의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다. 허난주헌(1563∼l589), 이매창(1529∼1592·신사임당의 딸)이나 선비 권정의 아내 정씨등도 구석방 깊숙이에서 다듬어진 아름다운 솜씨로「바깥분」들을 놀라게 했다.
『집안식구 치다꺼리에 살림걱정으로 하루해를 보내고 나면 온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무언가 정신적 피난처를 찾기 위해 붓을 들었죠.』 J서예연구소에 1년째 나와 붓글씨를 배우는 한 주부는 하루 1시간의 「피난」으로 머리를 씻고 즐거움을 맛본다고 말한다.
구석방의 뮤료함를 달래기 위해 붓을 들었던 여인들은 이게 복잡한 생활을 잠시 떠나 생각하는 여유를 갖기 위해 붓을 찾는다.
서울의 30여군데 서예연구소에는 전문적인 미술대학 출신을 빼면 9할이「취미를 가꾸는」부녀자들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동네마다 볼수 있는 작은「미술연구소」에도 어린이들 그림지도에 따라온 어머니들이 반을 꾸며「데상」이나 전개를 배우고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인들은 서양화보다는 붓글씨나 동양화쪽에 쏠린다고 한다.
서양화의 경우 선과 구도를 생각하는 정도로 되려면 3개월이상 그려야 된다고 한다.
『붓글씨는 정신과 체력을 모아 독자의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라고 서예가 김응현씨(동방연서회 대표) 는 권장하면서 혼자서 법책을 갖고 쓸 만큼 실력을 닦으려면 1년은 잡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취미로 시작, 안방의 솜씨를 넘어 대가의 경지로 들어간 분들도 많다. 붓글씨로 국전에 입선하는 경우는 흔하고 특선까지 한 가정부인도 여럿이다.
부인들이 글씨 다음으로 많이 배우고 있는 사군자도 간단한 도구로(붓·먹·벼루) 동양화의 무궁한 멋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시경에 이르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어려운 살림살이에서 하루 1시간이라도「조용한 때」를 갖는다는 것은 보통 주부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 주부의 말처럼 「정신적 피난처」로서 시간을 쪼개어 내는 것도 이 복잡한 사회속에 선 필요할 것 같다.
초보자의 경우 얼마동안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자기혼자의 방향을 잡는 것이 이상적인 「코스」. 혼자서 「마음」만 갖고는 힘들다고 말한다. 붓글씨를 익히고 동양화를 그리는 서예연구소의 수강료는 대개 한달에 3천원정도. 도구는 붓과 먹, 벼루등 합해 1천원미만이다.
서양학의 경우 서울의 연구소에선 월 3천∼5천원 수강료에, 화구 일습을 갖추자면 7천원정도. 수채화의 경우 2천원정도면 마련할 수 있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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