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고문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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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괴의 혹독한 고문으로 정신 착란증세에 빠진 손호길씨(31)는 16일 입원중인 서울대학병원에서 북괴는 그에게『간첩이지, 간첩, 자수해』라고 고함을 치며 갖은 고문을 했다고 털어놨다. 손씨는 심한「쇼크」와 북괴의 고문으로 아직도 맑은 제 정신을 되찾지 못해 당국의 주선으로 16일 하오 4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에서 가끔 제정신을 되찾을 땐 아득히 떠오르는 기억을 되찾아 억류 생활을 더듬더듬 예기할 수 있었다.

<금혼식 상의 길에>
강릉에서 농사일만 알던 손씨는 지난해 12윌 11일 노부모 금혼식을 서울에 있는 형제들과 상의하기 위해 곶감 3접을 갖고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것이 납북의 변을 당했다. 손씨는 현재 걸음이 부자유스럽고 온몸이 퉁퉁 부어있다.
그는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처럼 알려졌으나 오락가락하는 정신 속에서 정신이 제자리에 돌아올때에는 아득히 떠오르는 고문장면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굵고 낮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더듬는 손씨의 말투는 반벙어리 정도 입술은 검푸르게 부어 있었다. 지난 해 12월 15일 아침 다른 승객들과 함께 평양에 도착한 손씨는 대동강「호텔」 40호에 혼자 수용됐다. 이틀이 지난 17일 점심때쯤 손씨는 소위 북괴 안내원이라는 사람에 의해 다른 방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손씨를 의자에 앉히고 가루약을 물에 타 마시게 했다.

<머리에 직사광선>
이 때부터 손씨는 꿈꾸는 듯한 꿈속을 헤맸다는 것이다. 손씨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북괴수사관들은 손씨의 발바닥을 두들기면서 『간첩이지, 자수해, 자수하란 말이야』고 윽박질렀다고 손씨는 기억해냈다. 꿈속에서『사람 살려달라』고 외치며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손씨는 404호실에 돌아와 있었고,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날 괴뢰 수사관들은 다시 손씨를 끌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 가루약을 먹이고 의자에 앉힌 다음 머리 위에서 파란색 직사광선을 내리쬐었다.

<특수훈련 받았나>
산소 용접할 때 생기는 것과 같은 파란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다 깜박하는 순간 손씨는 다시 정신을 잃었고 괴뢰들은 손씨에게『특수훈련을 받았느냐』고 신문했다. 얼마쯤 지난 후 제정신으로 돌아온 손씨는 엉덩이에 주사자국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이후 뒤통수가 멍해오면서 정신이 흐려졌다고 괴로움을 호소했다.
5남 2녀 중 3남인 손씨는 다른 형제들은 전부 대학을 마쳤으나 유독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시골서 농사 일만해 온 기독교 신자였다.

<하루종일 좌정>
괴뢰들이 유달리 손씨를 고문한 것은 손씨의 건장한 체구,「스포츠」형 머리, 양복에「넥타이」가 국졸로 보이지 않았고 농사일로 손과 발에 박힌 굳은살을 보고 마치 특수훈련이나 받은 것처럼 의심을 품은 것 같다고 형 손호명씨는 추측했다.
그후 손씨는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면서 평양서 차로 5시간 정도 갔었으니까 신의주쯤 될 거라고 했으나 손씨가 갖고 온 동 병원 약 봉투로 보아 괴뢰군병원 같았다. 이 정신병원에서도 괴뢰들은 손씨를 뜨거운 온돌방에 하루종일 앉아 있게 하는 고문을 가해 손씨는 두발 복숭아 뼈와 옆모서리에 불로 지진 것 같은 화상을 입었다.
송환될 때 감상 같은 것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손씨는 16일 상오 부인 최형희씨(28)등 가족을 만났을 때 아무반응이 없다가 첫딸 의정양(1)을 안겨주자 한참만에 무표정한 얼굴에 눈물만 흘렸다는 것이다.
한참 제 정신이던 손씨는 침대주위에 마구 침을 뱉고「간호원 동무」를 부르다가 히죽이 웃기도 했다. 65일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손씨는 헛소리 속에서도 『이놈들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김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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