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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취업준비생들 "굿바이 스마트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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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김가연(25·여·서울 노량진동)씨는 두 달 전 1년 동안 쓰던 스마트폰 ‘갤럭시S3’를 동생에게 넘기고, 일반 휴대전화(피처폰)인 ‘LG 와인폰’을 인터넷에서 중고로 구입했다. 이유는 “도통 공부에 집중이 안 돼서”다. 김씨는 “하루 10시간이 공부 시간인데 스스로 점검해보니 그중 3~4시간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하고 있더라”며 “통화와 문자만 되는 피처폰으로 바꾸니 집중력이 확 늘었다”고 설명했다.

 #2. 행정고시를 앞두고 법전과 씨름 중인 이인범(27·서울 신림동)씨도 올 6월부터 이동통신재판매업체(MVNO)가 제공하는 ‘알뜰폰’ 서비스를 이용해 피처폰을 쓰고 있다. 친구들과 즐겨 하던 모바일 슈팅게임들에 중독돼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모바일 메신저로 친구들의 게임 순위 현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데,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게임을 하게 된다”며 “피처폰으로 바꾸고 나니 공부할 때는 물론 잠자리에 누워서도 게임이나 메신저 생각을 하지 않게 돼 머리가 맑아졌다”고 답했다.

 최신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은 20대 중에 ‘피처폰 리턴족’이 늘고 있다. 특히 고시 준비를 하거나 취업 준비에 바쁜 20대 중·후반 사용자들 사이에서 ‘반(反)스마트폰’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본지가 이달 2~5일 서울 노량진동·신림동에서 고시·취업준비생 57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한 결과 약 80%인 44명이 “스마트폰이 중독성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응답했다. 특히 ‘포털 검색 및 뉴스’와 ‘모바일 메신저’가 방해된다는 응답이 전체의 80%를 넘었다. 이들 중 10%가 넘는 6명이 “피처폰으로 바꿀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서울 노량진 고시원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한유통신’의 강신웅 매니저는 “대리점을 찾는 취업준비·고시생 5명 중 1명꼴로 피처폰 구입 문의를 한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업체가 스마트폰에 마케팅비를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팬택 등의 피처폰 판매대수 또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학생이 강의에 집중을 못하자 스마트폰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교수도 늘고 있다. 연세대 마광수(국문과) 교수는 1년 전부터 강의계획서에 “강의 시간에 교재 없이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필기하거나 검색하는 학생은 적발 시 F학점”이라고 공표했다. 마 교수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리포트의 질이 훨씬 뛰어났다”며 “요즘 학생들은 사색하고 연구하는 대신 댓글을 달고 트위터 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김유리(스페인어과) 교수도 강의계획서에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다 걸리면 경고 처리하고, 두 번째는 F를 준다’는 방침을 명시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딴짓을 많이 하는데 자신의 공부에는 물론 옆 사람의 학업에도 방해가 되는 행위”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의 중독성이 일상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심해져 반작용이 일어나는 것으로 설명한다. 고려대 김문조(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마트폰 검색과 채팅에 중독돼 있다”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수험생의 경우 이 같은 ‘독’을 없애기 위해 자연스레 스마트폰과 멀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 길기범 인턴기자

◆피처폰=사용자가 입맛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앱)을 설치할 수 있는 스마트폰과는 달리 제조업체와 통신사에서 탑재한 기능만 쓸 수 있는 휴대전화를 말한다.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같은 전화기 기본 기능에 충실하다. 2세대 이동통신(2G) 시절까지는 대부분이 피처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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