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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해와 의무감 등이 좌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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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1면

제2차대전 이래 미국이 세계에서 맡을 정확한 역할에 관해 미국사람들이 지금처럼 혼란에 빠진 적이 없다. 전후 20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을 특징지은 광범한 초당파적 의견일치는 이제 찾아볼 길이 없다.
지금 보이는 것은 현대세계가 직면한 도전의 성격과 비핵전력의 적절한 전개 따위를 둘러싼 광범한 초당파적 혼란뿐이다.
월남문제가 이 혼란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그 전부터 미국인의 인식에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공산주의 세계가 분열됨으로써 그에 대한 불안이 감소되자 미·소 공존의 희망이 커지고 저개발 제국에 대한 원조의 열의를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월남서의 피와 재산의 낭비는 미국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미국이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러한 국지전에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심각하게 제기했다.
작년 5월 [타임즈]지와 [루이스·해리스]가 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동맹국이 공산침략을 받았을 때 미국이 참전해도 좋다고 말한 미국인은 소수파에 불과했다. 예컨대 [베를린] 방위에 미군을 투입해도 좋다는 사람이 26%, [타일랜드]에 관해서 25%, 일본에 대해서는 27%의 미국인이 찬성을 했을 뿐이다.
이처럼 미국인이 확신이 없고 혼란과 불만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 외교정책의 지침을 재검토하면서 미국의 책임과 그 책임의 범위 및 한계에 관해 보다 많은 대중계몽을 실시할 호기라고 하겠다. 작년 7월 [닉슨]의 [괌]도 연설(닉슨·독트린)은 잠정적인 정책지침의 개략을 나타낸 것이다.
외교정책의 재검토와 대중계몽이라는 문제의 성격에 관해서는 4개의 총론적 관찰을 할 수가 있다.
첫째 미국 내에 충만한 [노·모·베트남](제2의 월남사태를 원치 않는다)이라는 반동이다. 이 충동은 제2의 세계대전을 피하자는 1930년대의 충동, 또는 또 하나의 [뮌헨]사건을 반복하지 말자는 1945년 이후의 충동에 못지 않는다.
둘째 국지적인 분쟁의 억제수단으로서의 비핵병력의 효력 및 비핵병력의 규모와 형태에 관한 종래의 이론이 의문 투성이다. 오늘날 소련이 독일을, 적군이 [나토]의 지중해지구를, 중공이 [버마]나 [타일랜드]에 기습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은 직업적으로 최악의 불상사를 가상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 군사전략 입안자들뿐이다.
발생 가능성이 큰 소규모 전쟁에서 미국의 비핵병력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할 것 인가도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정반대의 견해도 또한 약점 투성이다. 가령 유럽 지중해에 미국이 군대를 주둔시킬 이유가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 못하는 것이다.
약간의 미군병력이 즉응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은 억제력으로서 도움이 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예컨대 한국이나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을 방치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선 단순 명쾌한 새로운 이론은 쉽사리 발견되지 않고 문제 자체의 이해조차 쉽지 않음을 인식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세째 미국에 대해 이해관계가 한정되어 있고 미국이 비핵병기를 사용하는 사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그런 지역을 지리적으로 확실히 분류하기가 불가능하다.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도 책임 있는 정부라면 미군의 출동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정세가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군의 비핵병력을 사용할 경우와 사용해서는 안 될 경우를 구별하는 원칙을 확실히 정하기가 어렵다. 앞으로의 미군의 비핵병력의 사용에 관한 지침은 월남전의 결말에 바로 좌우된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그의 고문들이 어떤 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여부를 결정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미국의 의무감, 미국의 이익에 관한 감각, 성공의 가능성과 비용 및 위험의 정도, 사태의 직접 배경, 이미 있었던 사태와의 유사점, 의회와 국민의 공기 같은 것이 판단의 자료가 되는 것이다. [그레이엄·앨리슨, 어니스트·메이, 아담·야몰린스키 미 하버드대 교수 공동 집필 <포린·어페어즈지 l월 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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