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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영세상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눈·비를 피할수 있는 전세가게라도 한간 마련하는 것이 70년대 최대의 소망』이라는 L씨(41·서대문구 남가좌동 시장)는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위 속에서 연탄난로 하나 없이 떨고 지낸다. 목판에 어린이용 속옷 가지와 양말등을 벌여 놓고 철지난 손님을 기다린다. 겨울이 깊어지면 속옷 장사도 신통치 못해 하루 3백원 벌기가 벅찬다. L씨의 대목은 계절이 바뀌는 초여름과 늦가을.
그의 한달 수입이 1만원을 넘은 적이 없다. 여섯식구의 한달 쌀값이 4천8백원, 연탄 9백원, 찬값 2천원, 전기·수도세 3백원, 아이들 학비 1천원, 줄잡아 최저 9천원이 꼬박 지출된다. 물론 목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총 수입의 70%가 먹는 것에 지출되지만 L씨 내외는 점심끼니를 잊은지 오래다.
고구마엿으로 시장기를 메운다고 했다. 적자투성이의 가계를 메우기 위해『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는』생활철학을 몸에 익혔다.
무교동에서 조그만 다방을 열고 있는 K여인(29) 은『세금 등쌀에 못해 먹겠다』고 한다. 개인영업세, 소득세, 근로소득세, 유흥음식세, 전기세, 수도세등은 마땅히 내야 하지만 관할 경찰서, 파출소, 보건소, 세무서, 구청등에도 영수증 없는「세금」을 바치고 나면 3% 장사도 안 된다고 울상이다.
매달 5일의 자진신고때 판매량을 허위 신고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에서 발행한 영수증을 반으로 찢어 두배로 늘린다. 커피 한잔에 영수증 한장을 발행해야 하지만 반으로 찢으면 커피 두잔에 영수증 한장을 쓰는 꼴이다.
서울을 비롯한 도시의 변두리엔 골목길만 뚫리면 구멍가게가 들어서고 시장이 선다. 규모나 거래액수에 차이는 있더라도『장사를 하면 돈은 만질 수 있어. 그런 대로 굶어 죽지 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장사를 하는 것』이란다. 배운 것 없고 일자리 얻기 힘든판에 할 것이라곤 그나마 장사밖에 없다는 것이 영세상인들의 한결같은 말.
동대문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는 B씨(49) 내외는 밤잠을 모른다. 천호동에서 손수레에 야채를 싣고 밤길 2시간을 달려 시장에 닿으면 동이튼다. 하루벌이가 고작 6백원정도 B씨의 대목은 김장철이다. 김장때 한철 벌어서 l년을 사는 서민 B씨는 그래도 불평이 없다.『먹고살기가 바빠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었다.
신촌 [로터리] 에서 손수레 책방을 하는 K씨(41)는 적은 밑천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그가 취급하는 책은 저자의 검인이 없는 [덤핑] 해적판. 시중의「베스트·셀러」는 출판되기가 무섭게 복사판이 나오고 그의 고객들은 해적판만을 찾는다.
중구 북창동 골목에서 미제 과자장사를 하는 S여인(37)은『이 장사는 눈치가 빨라야 해먹는다』고 털어놨다. 경찰의 도보순찰제 강화로 하루에도 10여차례 보따리를 싸들고 숨바꼭질을 해야 하다.『목구멍에 거미줄 칠 수 없어』지게품을 파는 남편을 도와나선 그녀는 한 달 쌀값 5천원이라도 벌어야 되겠기에 보따리 과자장사에 나선 것이라 했다.
남대문「도깨비」시장에 부정외래품이 산더미를 이루고 미군부대 PX에서는 끊임없이 미제 물건이 흘러 나오는데『경찰은 왜 우리같은 서민들만 잡아 들여 벌금을 물리느냐』고 항변한다.
이들 영세상인들에겐 장사는 바로 먹고사는 절실한 생활의 수단으로 되어 있다. 상업을 하나의 사업이나 직업으로 여기기엔 너무나 수입이 적고 자본도 영세적이다. 가짜 상품, 부정식품이 넘치는 것도 마지고 보면 제품의 판매 및 거래를 상질서에 따르는 것보다 생계비를 얻어내는데 목적을 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소비가 미덕』이란 70년대에도 가난한 영세상인들은 소비할 수가 없다. 고속도로가 부산까지 뚫리고 30층짜리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루어도 서민들은 소외당한 채『강 건너 불』쯤 여긴다.
잘 산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 없다는 것이다. 영세상인이 바라는 유일한 소망은 정부가 직업훈련을 시켜 조그만 일자리라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면 보따리 장사는 당장에라도 때려 치우겠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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