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일자리 창출의 시금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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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경남테크노파크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수도권은 존(zone·지역)이 아닌 기능에 맞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도권 규제를 지역문제로 접근하면 수도권-비수도권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면서 “수도권이기 때문에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권역별로 특화해 전략적으로 (규제를) 풀 곳이 있으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박근혜정부가 현 부총리의 말대로 수도권 규제를 풀 수 있다면 김영삼 정부 이래 20년 넘게 추진해 온 우리나라의 규제 완화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강조했던 ‘손톱 밑 가시 뽑기’나 이명박정부가 자랑했던 ‘전봇대 뽑기’와는 차원이 다른 규제 완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도권 규제는 기업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덩어리 규제’임에도 역대 정부가 ‘치외법권’처럼 치부해온 규제 완화의 사각지대였다. 그동안 수도권 규제는 ‘국가균형발전’이란 미명 하에 흡사 지방 발전의 전제 조건인 양 간주됐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수도권의 규제를 풀면 지방 발전이 저해된다는 식으로까지 확대됐다. 이 때문에 수도권 규제를 일부라도 풀어야 한다는 하소연이 나오기만 하면 수도권을 제외한 전 광역단체가 벌 떼처럼 일어나 반발했고, 역대 정부는 그게 무서워 규제 완화를 외치면서도 수도권 규제만은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의 결과로 지방이 발전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수도권의 발전이 지체된 것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기업투자나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 것만은 확실하다. 수도권에 공장을 지을 수 없는 기업들은 지방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으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지방에는 입주하는 기업이 없어 텅텅 빈 산업단지가 즐비하다. (수도권 규제) = (지방 발전)이라는 허상에 빠져 더 늘어날 수 있었던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해외로 사라진 것이다.

 현 부총리가 언급한 ‘기능별 규제 완화’는 (수도권 규제) = (지방 발전)의 잘못된 등식을 깨는 발상의 전환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눠 획일적으로 규제할 것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에 맞춰 필요한 곳에 규제를 풀자는 것은 백번 맞는 말이다. 문제는 박근혜정부가 수도권 규제에 대한 지방의 (왜곡된) 반발을 무릅쓸 용기가 있느냐다. 수십 년간 고착된 규제의 성역을 깨는 일은 정권 차원의 추진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유일한 수치목표인 고용률 70%는 기업의 투자를 늘리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고, 획기적인 규제 완화 없이는 기업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길이 없다. 이 점에서 대표적인 ‘덩어리 규제’인 수도권 규제를 풀 수 있느냐는 박근혜정부가 ‘기업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이룰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