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판 '서바이버'쇼, '일자리를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미국에서는 게임쇼 참가자들이 백만 달러를 차지하거나, 세계적으로 떠들썩한 명성을 얻기 위해 겨룬다지만, 경제가 붕괴해 국민의 53%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수천 명의 경쟁자를 '휴먼 리소시스(Human Resources)'라는 쇼프로의 문 앞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꿈'은 이보다 훨씬 소박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전화에 걸려있는 일자리인 것이다.

'휴먼 리소시스'는 아르헨티나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새로운 TV 프로다. 경쟁자들이 겨루는 방식은 어째서 자신이 '최고상'을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번 주의 최고상은 '체육관 수위직'이다. 승자는 시청자들의 전화 투표로 결정된다.

이번 주의 도전자는 레안드로 페르난데스라는 22세 청년이다. 그는 캐논에서 복사원으로 일하다 1년 전 해고됐고, 장차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해 벌어오는 돈으로는 대출금을 갚을 수가 없어 집을 내주게 생겼다고 얘기한다.

페르난데스는 "어머니가 어두운 집구석이나 부엌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어머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게다가 나는 어머니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22살인데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레안드로의 경쟁자는 무력감을 느낄 따름이었다.

니콜라스 니에토는 쇼 도중 아르헨티나 남부에 살고 있는 어머니가 더 이상 아들을 도울 수 없어 슬프다는 내용으로 보내온 전화 메시지를 방영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니콜라스와 레안드로가 이번 주 결승 진출자로 뽑혔다.

제공되는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쇼 시작 며칠 전부터 예선전에 참가하기 위해 최고 수 천명이 몰려온다. 이 프로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 공짜 홍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극적인 상황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이 프로로 인해 창출된 일자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인구의 반수 가량이 실업 상태 또는 불완전 고용 상태에 처해있다. 또한 최근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3% 가량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25%가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말하면 9백만명이 먹을 것조차 부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프로의 진행자인 네스터 이바라는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이런 프로는 정신나간 발상으로 여겨졌을 것이라고 시인한다.

그는 "나는 애초 이런 프로가 생기지 않았다면 하고 바랄 뿐"이라며 "아르헨티나가 정상으로 회복됐더라면 예전처럼 일할 곳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녹화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체육관 주인이 레안드로와 니콜라스 두 사람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로 해 이 2명의 아르헨티나인 실업자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안겨준다.

지난달 AP통신은 홍콩의 실업률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때 2개 방송사의 간부들이 참여자들이 일자리를 두고 겨루는 내용을 다룬 쇼프로를 방영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아시아TV(ATV)는 9월 말 참가자들이 관광가이드나 헤어 스타일리스트, 한 입 크기의 중국식 만두인 딤섬 요리사 등의 직업을 두고 겨루는 '일자리를 잡아라(Win a Job)'라는 프로를 시작할 예정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스튜디오 관중석 전방에는 잠재적인 고용주들이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ATV의 거대한 경쟁자인 TVB의 애니 완 대변인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TVB도 현재 이와 유사한 프로를 계획하고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BUENOS AIRES, Argentina (CNN) / 이정애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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