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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 자단향-노산 이은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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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층암 절벽에 매달린
자단향 고목 둥걸 해와 달과
바람과 파도를 마시고 섰다
천년 침북 속에
옛 스님네 계율보다 더 푸른 빛깔
바라보면 눈 가에 서리 어리고
눈보라 치는 속에 꼿꼿이 버티었네
저 자단향 고목 등걸
영하의 차운 땅에서
오늘을 딛고 섰다
안으로 아픔을 참고 견디어
얼음보다 더 매찬 향기
바람을 찢으며 퍼지고 치솟고
태고의 반석 속에
뿌리 깊이 깊이 박은
너. 자단향 고목 등걸
죽음의 소용돌이를
내리 굽어보는 위태로움
그러나 이따금 허리 번쩍 쳐들면
그 오만한 앞가슴
발목은 고항으로 피가 배어도
몸뚱인 상처난 자국마다
옛 기억이 도사렸어도
어제보다 내일을 구상하는
너는 자유의 화신
썩은 독버섯 같은 온갗 지저분함
그러나 모두 다 잡초같이
가는 연대와 함께 말라버릴 것
다만 넘실거리는 동해의 파도보다
더 높은 자존심으로
새 연대의 마루턱에서
영원한 젊음을 노래하는
너는 이 나라 역사의 얼
한가지 우지끈 꺾어
민족의 향로에 불태운거나
세포 속속 맺힌 기원이
치솟는 향연 따라
하늘과 조상들께 사무치도록
돌아보면 갈라져 금간 땅
용광로엔 쇠도 녹는데
너는 오늘도 아물 길 없고
안타까와라
한번 손바닥 뒤짐듯 못하더냐
이 지지리도 못난 세월아
인욕의 산길 물길 넘어
와야할 그가 오는날 까지
나. 굳이 죽지 않고 여기
불사조처럼 서있겠노라
오으직 푸름으로써 맹세 짓는
성인봉 자단향 고목 등걸
복활의 새벽 하늘을 이고
눈서리 속에 거인처럼 섰다
굼쩍 않고 너울거리며 섰다
-1970년 첫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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