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퇴계선생 한시 80여수, 450년 만에 입을 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조선시대 성리학의 거봉인 퇴계 이황(1501~1570)의 한시 80여 수가 발굴됐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도산서원의 서고 광명실(光明室)과 퇴계 종택의 서고 상계 광명실에 소장돼온 '퇴계선생문집' 초본(草本.문집 간행을 위해 퇴계의 글을 그대로 옮겨 엮은 책)을 포함한 고문헌 및 고문서 등에서 한시 80여 수가 새로 발견됐다고 퇴계학연구원(원장 이우성)의 정석태 수석연구원과 문석윤 명지대(철학과) 교수 등이 1일 밝혔다.

시 외에 퇴계가 벗이나 제자, 가족과 친척에게 보낸 편지도 많이 나왔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한시들은 퇴계의 글을 망라한 '퇴계선생문집'(1600년)과 '퇴계선생전서'(1869년) 가운데 어느 쪽에도 실리지 않은 것들이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퇴계의 시는 국문시가 '도산십이곡'을 포함해 2255수다.

이번에 발굴된 시는 '퇴계선생문집' 초본에 14수가 들어 있고, 나머지는 낱장으로 보관돼 있었다. 66세에 쓴 '이월초육일대풍설(二月初六日大風雪)'은 '퇴도선생집(退陶先生集)'에 실린 '병인도병록(丙寅道病錄)'에 들어 있으며 제목은 '이월 초엿새에 눈보라가 몰아치다'라는 뜻이다.

'눈덮인 죽령 고개 하늘 높이 솟았는데, /소 떼가 달려가듯 세찬 바람 불어대네. //은혜로운 임의 명령 언제나 내릴는지/온갖 병든 외로운 신하 간절히 바라노라. (雪嶺截半空/陰風如逐萬牛雄//九天恩何時下/百病孤臣正渴衷.)'

'병인도병록'은 퇴계가 1566년에 출사하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명종의 거듭된 부름을 받고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서울로 가던 중 병을 얻어 풍기.예천.안동 등지를 돌며 사직을 청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심경을 시의 형식으로 쓴 일기다. 시가 담긴 쪽에는 당시 교정을 맡은 유성룡.김성일 등이 '꼭 집어넣어라(此首當考入)'는 부전지를 붙여놓았음에도 이 시는 끝내 문집에 실리지 않았다. 특히 퇴계가 제자 김취려에게 보낸 편지에 여러 편의 시가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오른쪽에 소개한 '제김이정소장김제산수도'는 제자 김취려가 자신이 소장한 김제의 산수도를 제재로 시를 지어달라는 요청을 해오자 퇴계가 70세에 그 그림을 보고 쓴 작품이다. 이 시의 제재가 된 그림은 북송 때 임포(林逋)가 은거했던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매화가 핀 풍경으로 짐작된다.

정석태 연구원은 "'퇴계선생문집'을 만들 때나 그 이후 추보편을 엮을 때 편지와 시, 다른 글들이 섞여 있는 자료를 충실히 확인하지 않은 까닭에 시를 모은 '시권(詩卷)'으로 옮겨지지 못한 시가 여럿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퇴계 관련 자료는 현재 안동의 국학연구원에서 위탁 관리 중이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