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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병의 주월미군 학살사건 증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뉴요크21일AP동화】1968년3월16일 미제11보병여단소속 1개 중대가「쾅가이」성 「미라이」촌의 세 마을에서 월남민간인 5백67명을 집단 학살하고 마을을 쑥밭으로 만든 사건이 미월 양국정부의 공동조사와 관련자 체포, 목격자들의 증언 및 사진공개 등으로 차츰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은 혼 월남전 제대군인「캘리포니아」주 「클래어먼트」대학생「르널드·라이덴아워」(23) 가 월남 귀환병에게서 듣고 지난9월5일「워싱턴」관계당국에 30통의 편지를 낸 데서 터져 나왔다.
미 육군성은 곧 사건관련 부대인 경보병여단 제20연대1대대C중대 소대장이었던「윌리엄·캘리」소위(26)를 제대 하루 전에 살인혐의로 체포, 이어「데이비드·미첼」상사(29)를 체포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며 미월 두 정부도 공동조사에 착수했다. 목격담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마이클·번라트 하사 (23·미 「뉴저지」주「포트딕스」기지 당시 C중대소속) 이 학살사건은 당시 C중대장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C중대가「미라이」촌인 근 포대에 진주 했을때「브리핑」에서 중대장이「미라이」4, 5, 6호 촌 부락민 전멸명령이나 다름없는 지시를 했다. 이튿날 아침 C중대는 마을사람들을 세 패로 갈라놓고 한패는 세워놓은 채 무차별 사살하고 다른 두 패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게 한 뒤 갈겼으며 그 수는 수백명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을 목격한 한「헬리콥터」조종사가 이를 고발했으나 그는 곧 살해되고 사건조사는 중지되었다.
▲로널드·해빌리 (28) 사건당일 해뜰 무렵 C중대에 도착하여「헬리콥터」로 부대와 함께「미라이」촌에 공수되었다.
마을에서는 선발대의 총소리가 들렸고 논에 착륙하자 약1백야드 앞에 월남민간인 남녀10여명이 걸어 가는게 보였다.
갑자기 옆에 있던 GI하나가 M16소총으로 이들을 난사했고 딴 GI는 M76수류탄 발사포로 민간인을 몰살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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