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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회담 오디오 생중계 … '약한 모습' 서호 대표 경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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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회담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대표단뿐 아니라 서울과 평양의 전략가들도 배후에서 함께 힘을 겨루는 치열한 전투다. 서울~평양 간 ‘원거리 전투’의 비밀은 회담장과 양측 지휘부를 연결하는 현장중계 라인에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남북 간 2차 실무회담이 끝난 지난 10일 서호 남측 수석대표가 공단 내 종합지원센터 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와대·국정원, 회담 육성 실시간 청취

 회담장인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의 남북 협상 내용은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상황실은 물론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내곡동 국가정보원으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집무실에서 회담 상황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얘기다.

 오디오 생중계를 들으며 서울의 지휘부는 협상팀에 ‘좀 더 당당하게 대응하라’든가 ‘세가 불리하니 정회를 요구하라’는 등의 대응 전략 및 세부 지침을 내린다. 25일 개성공단에서 열릴 6차 실무회담도 이런 형식으로 진행될 게 분명하다. 물론 이런 우리 측 통신내용을 북한은 알 수 없다. 서울에서 현장으로 지침을 줄 때는 암호화된 비화(秘話) 전화기·팩스가 쓰이기 때문이다.

 대표단에 국정원 소속 통신보안 요원이 반드시 수행하는 건 이런 사정에서다.

 우리 측 회담 수석대표였던 서호 전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지난 12일 전격 경질된 것은 이런 실시간 회담 모니터 시스템에 의한 것이었다는 당국자들의 전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1, 2차 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서호 전 수석대표의 발언을 탐탁지 않게 여긴 국정원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뜻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북한에 미온적 대응 … 청와대서 불만”

 여권 관계자는 24일 “서호 전 수석대표의 교체는 북측 단장인 박철수(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의 주장을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에 따른 도중하차”라고 밝혔다. 예컨대 박 단장이 “남측의 5·24 대북제재 조치 때문에 개성공업지구가 파탄 났다”는 주장을 펼치는데도 서 전 대표가 ‘천안함 폭침 도발에 따른 대응조치’라는 정부의 기본입장을 제대로 제기 못하는 등 전반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5·24 조치는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자 남북 간 교역과 교류를 전면 중단한 대북 경제제재를 말한다.

 정부는 5·24 조치 이후 한국민의 방북을 허가하지 않는 한편 제3국 등에서의 북한 주민 접촉도 제한해 왔다. 다만,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당시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오디오 생중계를 들은 정부 내 대북 강경라인은 지난 6~7일 이뤄진 첫 회담 때부터 서 전 수석대표에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정부 당국자는 “2차 회담을 마친 10일 밤 서 전 대표가 언론 브리핑 때 회담장에서 북측의 최고존엄(김정일·김정은을 지칭) 운운에 ‘우리도 존엄이 있다’고 강력 대응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만회에 나섰지만 결국 교체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군 출신인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회담 진행상황을 현장에서 체크해 수시로 팩스로 전송하곤 하는 국정원 직원의 상황보고서도 판단자료로 반영됐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회담 관계자는 “김기웅 새 수석대표가 북한과의 첫 대면 때 악수도 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 건 서울 쪽 관전자들을 의식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회담장 국정원 직원도 상황 보고·평가

 서 전 수석대표는 현재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다. 그의 교체 당시 통일부 관계자들은 서 전 수석대표가 주요 보직인 대변인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그는 아직까지 대기발령 상태다. 서 전 수석대표가 경질됐을 때 “고위공무원단 정기 인사로 인해 회담대표를 교체한 것일 뿐”이란 통일부 설명대로라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 전 수석대표는 회담 전략을 수립하거나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완전히 배제돼 있다. 최근까지 개성공단 주무국장을 맡았고, 회담 초반의 흐름을 가장 잘 아는 당국자를 배제한 건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그의 하차를 지난 1월 최대석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 낙마사태의 축소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북업무를 수행하던 중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도하차했으나 베일로 덮어버리고 당사자들은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왜 회담대표를 바꿔야 했는지 국민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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