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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퍼레이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추석 성묘길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울의 성묘인파는 무려 50만명. 망우리는 얼마동안 길이 막혔다. TV「뉴스」를 통해 본 그 길은 자동차의 홍수였다. 한때는 5천여대의 차량이 밀렸다고 한다.
성묘의 「붐」은 해마다 열이 오르고 있다. 근년엔 이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호화로운 차림에 「세단」을 몰고, 「트랜지스터」를 들으며 성묘를 가는 것이다. 경건한 마음에 앞서 유쾌한 「피크닉」감이 짙다.
선조에의 공경심과 그런 「붐」과의 반비례풍조는 어딘지 씁쓸한 고소를 자아낸다. 성묘는 소복을 하고 경외심에 젖어 조용히, 세상을 떠난 옛어른을 찾아뵙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습속이었다. 그러나 어쭙잖은 현대의 풍속은 그런것마저 앗아가버렸다. 요즘의 성묘는 일종의 「퍼레이드」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색다른 사회현상으로 분석할수 있을것도 같다. 『혹독한 군중』이라는 명저를 내놓은 「데이비드·리스맨」은 현대의 사회적 성격형성을 이렇게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타인지향형·전통지향형·내적지향형. 전통지향형은 과거의 가치에 집착한다. 내적지향형은 지식·도덕등 이상에 따라 행동한다. 타인지향형은 이와는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엔 「레이다」가 장치된다.
사람들은 서로 그 마음속의 「레이다」에 의해서 영향받고 행동한다. 이것은 복잡하고 착잡한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넓은 의미로는 「현대」의 속성이 그런것이긴 하지만, 우리는 이제 바로 그 「타인지향형」의 시민을 보고있는 느낌이다.
문화인수학자인 「E·프롬」이 현대사회의 인간을 「자동인간」으로 규정한것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주성을 잃고, 비인격적 권위에 동조하는 경향이 그 「자동적 인간」이다. 이것은 불안감·고독감을 없애고,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회적 「임기응변」이 아닐까?
우리는 하다못해 성묘객의 「매너」에서까지 일그러진 사회의 한 내면을 비추어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를 한결더 서글프게 만든다. 「타인지향」의 사회는 싱거운술렁거림뿐, 실속과 정이 없다. 삼남의 수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성묘「붐」은 우리의 미덕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허허실실「애드벌룬」같은 행사만 남겨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차분한 상식으로는 굳이 추석날만 자동차를 몰고 산소를 찾아야 하는지 알수없다. 그날쯤은 차라리 많은 시민들의 성묘를 위해 길을 비켜주는 금도가 있음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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