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마거리트·히긴즈종군기|포격속에 물벼락도 뚫고 전진|"이젠서울향해 가게될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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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욕·헤럴드·트리뷴 1950년 9月18일자>
「마거리트·히긴즈」기사는 여성으로서『도저히불가능한일』을 해치운 국제군사대기자이나. 「베를린」입성, 한국전, 그리고 월남전등에서 그녀의 이름은 세계에 알려졌으며 작년에는 월남전선에서 귀국한뒤 거기서얻은 병으로 49세를 일기로 일생을 마첬다. 그녀의 수많은 종군기중에서도 인천상륙전기는 가장뛰어나「플리처」상을받았다.
중무장한 미해병대는 9월15일새벽 10피트가 넘는 방파제를 넘어 인천ㅅ 한복판으로 진격해들어갔고1시간안에 3개전략지를 확보해야만했다.
◆………「붉은 해안」향해………◆
나는『붉은 해안」을 공격한 제5진에 속해었었는데 이 붉은 해안은 무척 거칠고 수직으로된 절벽들이 많아 제1공수부대는 사다리를 이용, 상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함포사격과 공중폭수의 지원을받아가며 상륙을 시도했으나 북비군은 소총과 수류탄등으로 악착같이 반항해왔다.
내가 속해있던 제5진의 대장「R·J·쉐닝」이라는 중위였는데「과달카날」작전을 포함한 5번의 상륙작전에 참가했던 역전의 용사였다.
「쉐닝」중위는 나에게『진수하기에 기가막힌「찬스」라고 소리치며 흥분햇다.
H「아워」2분전.
「쉐닝」중위는『하느님 아버지시여! 우리를 보살피소서』하고 기도를 드리더니『자! 출발이다. 진격하자!』고 외쳐댔다.
그러나 미해병대는 이른 새벽 월미도를 탈환했다. 조수의 격차가 심한 인천만특유의 조건때문에 우리의 수송능력 또한 지장을 받았다.
쌍방의 포화는 계속작렬했다.
H「아워」가 지난지 15분후 우리는 이미 해안으로부터 2천야드 떨어진곳까지 진격하고있었다.
좌우로 떨어지는 포탄세례와 이로인해 출렁거리는 물벼락을 맞아가며 계속 전진했다.
이때 우리는 가장반가운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
제1군이 그들의 목표인 관망대를 점령한느데 성공 했다는「뉴스」였다.
그러나 이소식을 듣고 흥분하고있던 우리쪽에 공산군의 포화가 계속퍼부어져 우리를 긴장케했다.
포를 맞아 타고있는 건물의 불빛이 하늘을 훤하게 밖혀줄 정도였다.
번쩍 번쩍 불빛이 비치자 옆에있던「뉴어크·뉴스」지의「존·데이비스」기자가『병사들의 얼굴을보시오』라고 소리질렀다.
◆………접근하는 LST………◆
모든 병사들은 앞으로 닥쳐올 육박전을 예감했음인지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그런중에도 그들의 얼굴엔 대작전을 기필코 승리로 이끌어야 겠다는 결의가 가득차 보였다.
우리가 방파제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LST한척이 우리에게 소리없이 접근햇다.
적에 들킬까봐 우리는 소리도 못내고 불도켜지않은채 LST근처로 몰려갔다.
LST의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니 그속엔 많은 병사들과 무기가들어있었다.
밤이되자 해병대의 총지휘관은 우리에게 경계태세를 더욱 강화하라고 명령했다.
얼마후에 바닷물이 서서히 빠져나가기시작했다.
인천만의 조수는 워낙 심해서 우리는 H「아워」가 시작된지 만4시간동안 아무일도 할수없었다. 새벽이되어 바닷물이 다시 들어옴으로써 우리의 선박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H「아워」가 시작된지1시간1분만에 3개의 공격지점이 성공리에 아군손에 장악되었으므로 이제 문제는 우리의 각종「탱크」와 무기를 상륙시키는 일뿐이었다.
◆………장관을 이룬포화………◆
모든 행정요원과 운전병, 사무요원,「쿠크」들까지동원되어 무기상륙을 도왔다.
거대한 LST가 각종화기를 쏟아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얼마 안되어 북괴병사들은 속속 항복을해왔고 그들이 두손을 든채 LST고 끌려오는 모습은 통쾌했다.
그당시 으리일을 도와준 인천태생의 한국해병대 우대위의 즐거워하는 표정은 잊을수가 없다.
우대위는『북괴근들이 미군들의 힘을 안다면 그들은 떼지어서 아군쪽으로넘어올것』이라면서 의기양양 했다.
으리가 해군모선으로 되돌아올때만 해도 해군함정들은 상륙하는 해병대의지원 포격을 계속하고있었다.
『지금쯤 미해병대는 성울로 가는 길을 뚫고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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